사운딩 - 그곳에 회색고래가 있다
도린 커닝햄 지음, 조은아 옮김 / 멀리깊이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책은 멀리깊이 @murly_books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운딩> - 사라진 삶의 조각을 쫓아
 
 
 
🫧
한 여자가 아이와 함께 북극까지 간다.
두 살배기 아이의 손을 잡고
회색고래를 따라
16,000킬로미터를 달린다.

이 여정은 여행도 아니고, 모험도 아니다.
도망이었고, 시도였고, 기도에 가까웠다.
 
 
🫧
그녀는 원래 기자였다.
런던에서 일했고, 성공한 편이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았고, 삶이 바뀌었다.
직장도, 집도 사라졌다.
싱글맘을 위한 셰어하우스에서
앞으로를 생각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뎠다.
 
 
🫧
그러던 어느 날 고래 기사를 읽는다.
거대한 바다 위를 새끼를 데리고
남에서 북으로 헤엄치는 어미 고래들.
그 길을 따라가기로 마음먹는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저 그들처럼 움직이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
아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좁은 방이 아닌, 아주 큰 세상을.
절망을 기억하는 대신
새끼 고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 믿었다.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밥을 먹이고,
낯선 기후에서 잠자리를 찾고,
말보다 먼저 표정을 읽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
고래의 경로를 따라 도달한 북극해에는
이누피아트 공동체가 있었다.
수천 년을 바다 옆에서 살아온 사람들.
생존은 사냥과 맞닿아 있었고
그 사냥은 고래와의 약속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지낸다.
해설자가 아니라
관찰자도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그 자리에 함께 선다.
 
 
🫧
기후위기에 대한 메시지는 격하지 않다.
설명보다 풍경이 먼저 온다.
분노보다 연결이 더 또렷하다.

고래는 길을 잃지 않고,
바다는 질문을 묻지 않는다.
함께 숨 쉬는 존재로서의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증명해내야 하는
시간 속에 놓인다.
 
 
🫧
육아와 환경, 사랑과 상실,
그 모든 것이 얽혀 있지만
무언가를 강조하려는 문장은 없다.

버텼던 날들을 솔직하게 적었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남겼고,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문장마다 어렴풋하게 담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다시 살아보기 위해 남긴 흔적들.
아주 작은 목소리들이
해안선 따라 이어지고,
바람 속에서 남아 있다.
 
 
🫧
고래를 처음 발견한 순간,
그녀는 아이를 안고 소리 없이 웃었다.

삶이 무너지고도
다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무너졌던 만큼의 방향이 생긴다.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였던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된다.

고래는 바다를 건넜고,
그녀도 자신을 건넜다.
 
 
 
📍
멀리서 들리는 고래의 숨소리처럼
지워지지 않고 오래 따라왔다.
기록이라는 이름 아래
조심스럽게 눌러 쓴 마음들이
어쩐지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나와 아이, 그리고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바닥이
어디쯤에서 흔들리고 있는지를

잠시 멈춰 돌아보게 하는 여정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