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브루노 야시엔스키 지음, 정보라 옮김 / 김영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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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김영사 @gimmyoung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파리를 불태운다> - 전염병이 휩쓴 도시에서 일어난 일

📌 책 소개

전염병이 창궐한 파리는 점차 폐허로 변하고, 생존자들은 인종, 계급, 이념에 따라 각자의 구역을 만들고 봉쇄에 들어간다.
혼란 속에서 억눌린 야망이 들끓고, 자본주의 대도시의 균열은 혁명의 기회로 뒤바뀐다.
도시의 생명줄이 하나둘 끊어지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 권력과 저항이 뒤엉킨 긴장이 이어진다.
파리 한복판에서 탄생하는 새로운 정치 실험과, 그 안에 살아남은 이들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이 혼란과 재건의 흐름 속에서, 도시와 인간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서평

💡첫번째 바이러스는 공기, 두번째는 불신

도시는 마치 사람처럼 아프고, 열이 나고, 자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재채기 하나로 시작된 전염은 거대한 파리 전체를 바꿔버렸다.
감염보다 더 빠르게 퍼진 건 서로에 대한 의심이었다.
정부보다 빠르게 움직인 건 각종 소문과 혐오였고,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인 건 타인을 믿지 못하는 시선이었다.
기계처럼 돌아가던 도시는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생존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담을 쌓고 서로를 잘라내는 것이 되었다.
거대한 도시의 동맥이 끊어지기 시작하자,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심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심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신과 공포의 응어리로 만들어졌다.

💡도시가 나뉘는 순간, 인간도 쪼개진다

한 도시 안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소국가, 그 안에 담긴 수백 개의 공동체, 그리고 그 안에서도 나뉘는 수천 개의 얼굴들.
혼란은 사람을 작게 쪼개고, 쪼개진 사람은 점점 말이 줄어든다.
언어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은 국경 때문이 아니라, 이미 마음의 경계가 단단해졌기 때문이다.
문을 닫는 건 감염 때문만이 아니라, 변명 없이 살아남고 싶어서다.
감염은 핑계가 된다.
오히려 인간은 혼자일 때 더 편하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는 와중에, 뜻하지 않은 연대가 다시 불쑥 고개를 들고, 다시 부서지고, 또 엉킨다.
이렇게 나뉜 도시 위를 걷다 보면, 사람들은 지도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의 구획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불붙은 땅 위에서 다시 걸어야 한다면

모두가 사라진 폐허 위에 홀로 서는 순간, 인간은 기묘하게 낙관적이 된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무기가 되고, 새로운 제국의 기초가 된다.
피로 얼룩진 길 위에서도 ‘다시’ 라는 단어는 의외로 가볍게 사용된다.
과거가 철저히 무너졌기에 미래를 향한 상상은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타버렸을 때, 사람들은 오히려 더 멀리 보고 더 크게 짓는다.
다만 불안은 여전히 흔적처럼 남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새로 짓는 집 위에도, 전염병의 먼지는 내려앉는다는 것을.
그럼에도 손에 벽돌을 들고 다시 걷기 시작하는 이들은, 어쩌면 도시보다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마지막 메시지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라디오는 작은 소리를 남긴다.
그 안에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문장이 담겨 있다.
감염병의 소문은 거짓이고, 살아남은 자들이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는 전언.
하지만 메시지는 기이하게 깨지고 엉켜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허구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말들.
신호의 끊김은 시대의 단절이기도 하고, 새로운 장의 서문이기도 하다.
그 모호한 문장들 사이로 들리는 피아노 소리는 장난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새로 짓는 도시의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사라진 도시의 자리 위에 울리는 목소리는 그렇게 희미하지만 뚜렷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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