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과 이혼의 연대기 - 2025 8월 책씨앗 문학부문 추천도서
정광모 지음 / 산지니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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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산지니 @sanzinibook 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 - 경계 위를 걷는 기분

📌 책 소개

📖상상 속에서 반사된 인간의 초상

등장인물은 인간, 혹은 인간처럼 설계된 존재들이다.
소설집엔 일곱 편이 실려 있고, 각각 다른 공간과 시점을 갖고 있지만 어떤 이야기든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을 다룬다.
‘멸종’ 이라는 말은 거창한 듯 들리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불안한 감정, 인간이라는 종이 느끼는 존재 불안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이혼’ 역시 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연결과 단절을 반복하는 감정의 구조 자체가 주제다.
인물들은 도망치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고, 때론 그냥 흘러가기도 한다.
그 움직임을 SF라는 틀 속에 담아놓은 이야기들이다.
허구 같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상상이 아닌, 실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
결국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는 읽는 사람의 감각이 결정하게 된다.

💬서평

💡불편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처음엔 뭔가 복잡한 설정이 나올 줄 알았다.
제목도 거창하고, 장르도 SF라고 하니까 미래 얘기겠거니 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면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복잡한 과학 기술보다 훨씬 사소한 감정이 먼저 등장한다.
아프다는 말 대신 피곤하다고 말하고, 외롭다는 말 대신 그냥 지쳤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인물들이 많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서, 오히려 감정이 더 크게 보이는 이야기들이 있다.
불안하다거나 슬프다는 표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읽는 내내 그런 감정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든다.
감정이 직접적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데도, 그 분위기는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이야기의 구조는 조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기운은 꽤 크다.
가만히 있는데도 확장되는 느낌.

💡기계는 식지 않지만 사람은 지친다

작품을 만드는 시스템이 등장한다.
온몸을 차가운 탱크에 넣고, 글을 쓰기 위해 열을 내고, 저장 장치로 글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말만 들으면 되게 공상과학 같은데, 그 묘사가 너무 현실적이다.
마치 매일 마감하는 사람의 생리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만한 고단함이 들어 있다.
글을 쓰는 일에 특별함이 없다는 걸 아주 특이한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효율적으로 쓰는 것보다 꾸역꾸역 이어가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거창한 상상보다 피곤한 몸이 먼저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창작을 위한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까지는 뭔가를 만들 수 있지만, 그 에너지가 떨어지면 시스템이고 뭐고 다 멈춰 버린다.
아이디어보다 체력이 먼저 떨어지는 날이 있다면, 그런 느낌과 꽤 비슷하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감

멀리 떨어져 있어도 통화 한 통이면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낼 거라고 말하고, 힘들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지만, 그런 말들은 대개 마음을 덮지 못한다.
딸을 걱정하는 엄마와, 그런 걱정을 애써 가볍게 넘기려는 목소리 사이엔 무게 차이가 있다.
말은 오가지만 감정은 걸쳐진 채로 남는다.
안드로이드나 긴꼬리족 같은 설정이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그 거리감은 쉽사리 줄지 않는다.
묘하게 친절한 말들이 자꾸 벽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서로를 향해 있는 듯한 대사들이 자꾸 비껴간다.
말은 이어지지만, 그 말이 닿는 건 어쩐지 전혀 다른 방향이다.

💡상상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

이야기에는 상상력 넘치는 설정이 많다.
창작을 기계처럼 수행하는 시스템, 인간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외계 문명, 건강 회복을 위해 누군가에게 양도되는 탑승권 같은 것들.
그런데 그 설정들이 뭔가 대단한 모험이나 반전을 위한 장치는 아니다.
대부분의 서사는 조용히 흘러간다.
관계를 복원하거나, 감정을 감당하거나, 잠깐 멈춰 서는 식이다.
그래서 더 묘하게 읽힌다.
환상적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은 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늘 감정보다 상황을 먼저 보여주고, 인물들은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흘려보낸다.
이 책에 나오는 상상들은 현실을 피해 도망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틀처럼 보인다.

기술보다 인간이 먼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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