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모란 마자르 지음, 김희진 옮김 / 미메시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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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 독일의 젊은 무용수 울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꿈꾼다. 그러나 울리의 취향은 명망 높은 독일의 현대 무용 학교와 어울리지 않았고, 베를린을 여행하던 중 미국인 무용수 앤서니를 만나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꿈을 품게 된다. 결국 울리는 독일을 떠나 뉴욕을 정복하고자 대서양을 건넌다.



울리를 보며 우리는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는 사랑스러운 주인공이지만, 흑인인 앤서니나 여성인 룸메이트 패티보다 훨씬 빠르게 원하는 성공을 달성한다. 그의 성공가도는 오롯이 그의 능력과 열정 덕분이었을까? 자유의 도시 뉴욕이 그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가진 '백인 남성'이라는 기득권 때문은 아니었을까.

작품 속에서 울리의 실력이 상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독일에서 그가 솔로를 출 때 동료들이 웃으며 "그래, 이번에는 진지하게 해볼 사람?" 하고 묻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독일 무용의 정형성과 울리의 경쾌한 리듬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울리의 춤이 주류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이지는 않다는 방증으로도 읽힌다.



이 책은 울리가 발 디디고 선 연도를 구체적으로 표기하며 독자에게 시대상을 직시하게 만든다. 1950년대 후반의 미국은 화려한 재즈와 브로드웨이의 황금기였지만, 동시에 지독한 인종 차별과 가부장제, 성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공존하던 모순의 시대였다. 이 비정한 현실 속에서 시스템은 아무리 뛰어난 흑인과 여성이라도 변방에 묶어두었고, 이방인일지언정 '백인 남성'인 울리에게는 기꺼이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울리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면 서사는 더욱 입체적으로 변한다. 1957년을 살아가던 청춘이라면, 1940년대 유년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낸 전쟁 세대일 수밖에 없다. 맨 앞장부터 계속해서 그의 꿈에 나오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탄, 무너지는 건물,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인간들의 모습은 울리의 뼈에 새겨진 실제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뻣뻣해지고 싶지 않다"고. 이 '뻣뻣함'이라는 단어는 울리라는 인물의 핵심적인 결핍과 열망을 굉장히 시각적인 언어로 응축해 둔 것인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정체된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고여 있거나 멈춰 선다는 것은 곧 그 뻣뻣함에 잠식당하는 두려움이니까. 

그래서 울리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고 점프를 했던 게 아닐까?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인들의 춤은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로 뛰어오르며 땅을 박차는 거침없는 생명력과 자유 그 자체였을 테니까. 몸 전체가 떨렸다는 건 영혼이 소리치는 거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저곳에 내가 찾던 움직임이 있다, 저렇게 움직여야만 나는 진짜 살아갈 수 있다라고. 그렇기에 울리는 미국으로 건너와 뻣뻣함에 저항한다.


울리가 겪은 전쟁의 아픔과 동시에 뉴욕이라는 거대 사회에서 그가 뜻하지 않게 '강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설정은 지독할 정도로 입체적이다. 이 책이 단순한 개인의 성장 서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발 딛고 서있는 사회의 뒤틀린 구조와 강제로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무대의 춤이 곧 시대의 언어가 되는 연출들 역시 말이다. 결국 울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뻣뻣함'을 거부하려 했던 일은, 개인이 혼자 자유롭게 날아오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딛고 선 세계의 가장 뻣뻣하고 완고한 모순들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고뇌해야만 하는,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서막이었던 것이다.



+그림은 물론 너무 좋습니다. 말을 못하는 건, 내가 관련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고...그거 조앗어요...멋있었어요. 역동적이었어요...하게 되기 때문......;ㅅ;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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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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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숙려 캠프>에 나가면 딱 좋은 부부가 여기 나온다. 

남들 보기엔 뭐 엄마아빠 아이 둘, 나쁘지 않은 가족의 형태지만 부부의 사이는 냉랭해진지 꽤 됐고, 결국 남편 밍런은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코끼리' 같다면서 가정에 쏟아야 할 의무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다. 뭔 말도 안되는 말로 (개)소리를 하던 남편 밍런과 아내 정팡은 결국 이혼 도장을 찍는다.


개인적으로 이혼 이후에도 단지 아이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내인 정팡이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거나 자꾸 뒤를 캐려는 게 약간 답답하기도 했음. 새 삶 사세요 제발... 이미 끝난 관계에서 "거 봐, 너 바람피웠던 거지?"라는 확답을 얻는 게 정팡에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코끼리니 뭐니 하는 황당한 궤변으로 이혼을 당했으니, "당신에 대한 감정이 아예 죽었다"던 남편의 잔인한 고백 뒤에 숨은 진짜 '이유'를 알아야만 비로소 자신도 새로운 길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절박함 때문이었을까. 이혼 후 한 달 뒤 남편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고, 정팡은 전남편의 뒤를 캐려던 지난 시도들로 인해 다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존재가 어느 날 가장 낯선 타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정팡은 남편이 남긴 의문의 단서들을 따라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수증에 찍힌 뜬금없는 베이비파우더, 몸에 새겨진 문신, 남편의 밀폐된 작업실 같은 조각들을 모은 끝에 마침내 마주한 판도라의 상자. 후반부에 드러나는 비밀은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상상조차 못 한 진상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된 남편과 그의 자살, 마침내 마주한 기괴한 진실"이라는 책 띠지의 문구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이 소설이 정말 인상적인 것은 삶을 대하는 아내와 남편의 극명한 태도 차이에 있다. 남편 밍런은 현실을 회피하다가 결국 '죽음'이라는 가장 비겁한 도피처를 택했지만, 정팡은 자신의 내면을 처참하게 헤집는 상처를 일단 직시하고 풀어내려 끝까지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제목 속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행위를 연상시킨다. 

삶이란 때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한 개인이 품어안기엔 너무나 크고 거대한 고통이 몰아치기 마련이다. 코끼리처럼 거대한 존재는 멀리서 보면 그저 압도적인 덩어리로만 느껴진다. 마치 남편이 저지른 살인과 그가 숨겨둔 비밀이 정팡에게 커다란 충격의 덩어리였던 것처럼.

그러나 목욕을 시키기 위해서는 거대한 몸체에 바짝 다가서서, 거친 피부를 직접 만지고 주름진 틈새와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이유를 명확히 마주하고자 추악한 진실마저 제 손으로 직접 씻어내던 정팡처럼 말이다.  


추악한 진실 앞에서도 끝내 뒷걸음질 치지 않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일종의 강인한 회복의 미스터리. 고통을 피하는 대신 기어이 헤집어 마주하려는 이 숭고한 사투의 끝에, 그 균열 위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과 함께 눈부신 회복의 증거를 볼 수 있게 된다.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건지도 몰라." 이 부분 초반에 읽으면서 이 미친새끼가 이혼을 하던가 아주 그냥 번식 의무를 행하기 위해서 결혼했다니 이거 아주 뇌를 휴지심으로 만들었나? 이러면서 읽었는데 또 마지막까지 읽으니까 틀린 말은 아님

아 근데 진짜 남편 밍런에 대한 욕이 목구멍에 꽉 낌 진짜 원색적인 비난도 완전 가능. 교환독서용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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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속의 서커스 네오픽션 ON시리즈 38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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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아포칼립스를 다룬 대개의 이야기가 '생존'이라는 목표 아래 주인공의 뒤통수를 따라가는 방법을 취한다면, 이 소설은 조금 다른 방향을 취한다. 어느 하나 곁다리로 머무는 인물 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각 개개인이 제각기의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무섭게 질주하며 나아간다. 수혈을 위해, 출산을 위해, 심지어 덕질을 위해.


여기에 한 가족이 있다. 어느 가족 구성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 없음. 근데 엄마 환장하게도 좀비 사태가 터졌는데 각자 서울 가야겠다고 난리임

근대 (대기업 때려친 백수 오타쿠 -> 코믹페스티벌 가야함) + 초희 (만삭의 임산부 -> 수술은 서울 산부인과가 최고지, 근데 좀비 증상 있음) + 초과(작가, 사연 좀 많이 복잡 -> 내 딸 수술해야되는데 내 피가 필요하대. 가야함.) + 엄마 숙영 (가운데에서 자식 새끼들 때문에 환장)

내가 보기에 숙영이 없었으면 이 가족은 진작 해체되고 거리에 나앉았음...


눈에 띄는 지점은 이들의 행보가 대체로 납득이 어렵다는 것이다. 좀비가 들끓고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사태를 진압하고 있는 와중에 굳이 밖으로 나간다는 결정 자체가 그렇다. (이런 상황에 코믹 페스티벌을 가야겠다며 나가겠다는 아들이 숙영의 눈에 정상으로 보이겠는가...) 그러나 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구구절절 독자에게 설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어긋난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계기가 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벽을, 무언가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 결국 길을 열어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상단에서 사용했지만 사실 이 소설은 굳이 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어 감정을 호소하고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철저하게 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자식들을 위하고 지키려는 숙영의 마음에서 나오는 강인함, 그리고 초과와 윤재의 관계 같은 것. 겉보기엔 가볍게 즐기는 사이같고 내밀한 감정 교류도 딱히 없어 보이지만, 정작 가장 가깝고 진한 연대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순간에 곁을 지키는 건 이 '가벼운 사이'이다. 가벼운 관계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과 동시에 어쩌면 사람이 사람의 곁을 지키는 데에는 사랑이 전부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감상이 든다.


이 가족은 무너지는 세계 앞에서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대신 움직인다. 위험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머뭇거리기보다 선택을 밀어 붙인다. 그렇기에 이 가족에게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무대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각자가 붙들고 있는 것을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장에 가깝다. 결국 이들은 끝까지 멈추지 않는 쪽을 택한다. 재난의 한복판, 그 어두운 숲속에서도 기어이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평범한 인간들의 비범한 서커스였다.



+제가 그렇게까지 오타쿠였던 적이 없어서 살짝 이해는 안 가는데, 진짜 좀비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코믹 페스티벌에는 가야합니까...? 에브리바디 좀비면 거기 오는 사람들도 좀비일거고 걔네가 덕질 파티를 하지는 않을거 아냐....

이런 좀비 사태에서 일반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감염자냐고 의심하고 폭력적으로 대할 때, 숭고한 애니 대사를 날리면서 도우려고 하는 게 오타쿠라는 점... 여기 오타쿠들 명대사 꽉 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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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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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은 ‘2026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들’로 묶여 있다. 인공지능, 갓생, 불임, 교육, 범죄, 계엄... 분명 우리가 사는 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단편들이 남기는 것은 명확한 답이 아니라 반복해서 감지되는 어떤 공백이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 분류하는 일(#유령),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않고 갓생처럼 보이게끔 연출하거나(오민아의 남부러운 삶)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서사로 소비하는 상태(방콕), 아이는 있는데 아이의 목소리는 지워진 풍경(키즈카페) 속에서 그제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현재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으며 이 막연한 공허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단편들의 포인트는 바로 그 ‘불분명함’에 섣불리 답을 내려 해소하지 않고 그저 드러내는 데 있다.

예컨대 자극적인 범죄 이야기에 익숙해진 인물이 현실에서 마주한 의심스러운 장면은 끝내 진실로 확정되지 않은 채 멈춘다. 독자는 이미 익숙해진 이야기의 프레임을 가져와 그 빈칸을 서둘러 조립하지만, 소설은 그 확신에 의문을 던진다. 객관적 사실은 부재하고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시선만이 단서로 남을 때, 자극적인 도파민이라는 것이 우리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왜곡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방콕」, 성혜령)


다른 이야기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조정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도 그것을 말할 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침묵을 택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의 정서적 상처를 마주하고도 성과의 언어로만 대화를 이어간다. 인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극적인 변화를 맞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언어로, 그러나 어딘가 텅 비고 어긋난 채로 현재의 한국을 통과할 뿐이다.


결국 겉으로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회를 뜯어보면, 감정은 지워지고 관계는 기능으로 대체되며, 삶은 점점 측정과 관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무엇이 결핍되었고 놓쳐버렸는지조차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태 뿐이다.


19인의 소설가가 직시한 '지금, 이곳의 우리'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어딘가에 공허하게 뚫린 부분이 있으나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사회의 여러 요소가 맞물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쉽게 붙잡히지 않는 현실 말이다.

(예를 들어 작품 속 사교육 열풍 역시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선택으로 내몰리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살고,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한다 믿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단편들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뉴스 기사가 담아내지 못했고, 우리도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공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안락한 착각들에 물음을 던진다.


+이렇게만 말하면 건조하고 서늘한 단편만 가득할 것 같지만 김병운의 「일한 기록」이나 계엄에 대해 쓴 정용준의 「일어나지 않은 일」 같은거 보면 다시 인류애와 눈물이 충전됨.

특히 「일한 기록」은 너무 좋았는데, 청각 장애를 가진 채 20여 년간 성실히 근무하고 퇴직하는 아버지에 대한 단순한 연민에 그치지 않는 점이. 아버지만큼이나 쉬지 않고 일해왔지만, 공식적인 ‘직장’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감사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도 없던 어머니의 삶을 조명하는 게 진짜 너무너무 좋았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의 시간을 복원해낸다니, 이런게 소설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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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달린 여자
서계수 지음 / 오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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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 "자기가 무슨 만두를 먹은 건지 알아차린 사람들에겐 변화가 생겨요. 이를테면…"

남성 고기로 군만두 만들어주는 <만회반점>

어느 날부터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 남자가 단 하나의 ‘정상적인’ 존재와 마주하는 〈머리 달린 여자〉

검은 정장을 입은 동양인 여성의 형상으로 등장하는 루시퍼가 인상적인 <지옥은 악마의 부재>


『머리 달린 여자』에는 이 세 단편을 포함한 다섯 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각기 다른 설정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한 지점을 향한다. 일상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추악한 폭력의 단면을 바라보고, 그 견고한 구조에 묶여 있던 존재들을 비틀린 방식으로나마 해방시키는 서사라는 점이다.


특히 표제작이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이유는 ‘보지 못한다’는 인물의 상태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적 이상이라기보다, 타인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현대인의 무감각한 태도에 더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누군가의 눈빛과 표정을 읽어내는 시선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타인을 향한 감정 역시 너무도 쉽게 산화된다. 그렇게 지워진 얼굴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라, 소비 가능한 무언가로 남는다.

이 기괴한 설정이 낯설기보다 오히려 익숙하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나 역시 타인의 고유한 객체로 바라보기 보다 직함이나 특징 같은 편리한 데이터로만 규정하며 정의내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솔직한 감상을 덧붙이자면 마냥 가볍고 재미있게만 읽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도 있었다. 소재와 설정은 정말 흥미롭고 기발했지만, 화자가 바뀌는 지점이나 시간의 이동이 명확한 신호 없이 그냥 다음 문단에 곧바로 이어지기도 해서,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면 꽤 집중이 필요했다. 무언가 표시 없이 갑자기 다음 문장에서 확 변해버려서 처음에는 살짝 놀랐음. (헥터가 화자였는데 갑자기 다음 문장에서 샛별이가 화자로 변한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여성들이 그저 나약한 피해자의 위치에 머무르기를 거부한다는 것. 그 변화는 때로 과격하고, 때로 불편하며, 억압받은 세월의 크기만큼 잔혹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가두고 있던 답답한 틀이 전복되는 쾌감이 발생한다. 스스로 '매력적인 괴물'이 되어 복수를 완성하는 여성들의 연대기는 보는 내내 서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 <만회반점>에 끌려서 읽었는데 나 좀 이런 류에 강하게 끌리는 경향이 있어.... 비슷한 종류로 남유하 작가의 『양꼬치의 기쁨』(2021, 퍼플레인)이 있음. 남편으로 양꼬치 만들어주는 가게. 이 책도 골때림. 남편으로 양꼬치 해준다니까 아내가 우웅...내 남편 화장실 갔다가 손도 잘 안씻구 그래서 누린내 날텐데...이런 고민함.


++ 아 조금 아쉬운건 <머리 달린 여자>에서 왜 머리 달린 여자가 진성에게 나타났는지, 그 여자는 누구인지 이거 출판사 소개문에서 빼주시지ㅠㅜㅜㅠ나는 이거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서 헐! 이런 충격을 받았는데, 이 글을 작성하면서 보니까 너무 다 드러나 있길래 이게 좀 아쉬워요...ㅠㅜ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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