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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소설, 한국을 말하다 ㅣ 소설, 한국을 말하다
성해나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6년 4월
평점 :

이 소설집은 ‘2026년 지금의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들’로 묶여 있다. 인공지능, 갓생, 불임, 교육, 범죄, 계엄... 분명 우리가 사는 현실을 다루고 있음에도, 이 단편들이 남기는 것은 명확한 답이 아니라 반복해서 감지되는 어떤 공백이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고 분류하는 일(#유령),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않고 갓생처럼 보이게끔 연출하거나(오민아의 남부러운 삶)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서사로 소비하는 상태(방콕), 아이는 있는데 아이의 목소리는 지워진 풍경(키즈카페) 속에서 그제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현재를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어버렸으며 이 막연한 공허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모르겠다고.
이 단편들의 포인트는 바로 그 ‘불분명함’에 섣불리 답을 내려 해소하지 않고 그저 드러내는 데 있다.
예컨대 자극적인 범죄 이야기에 익숙해진 인물이 현실에서 마주한 의심스러운 장면은 끝내 진실로 확정되지 않은 채 멈춘다. 독자는 이미 익숙해진 이야기의 프레임을 가져와 그 빈칸을 서둘러 조립하지만, 소설은 그 확신에 의문을 던진다. 객관적 사실은 부재하고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시선만이 단서로 남을 때, 자극적인 도파민이라는 것이 우리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왜곡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방콕」, 성혜령)
다른 이야기들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조정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도 그것을 말할 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침묵을 택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의 정서적 상처를 마주하고도 성과의 언어로만 대화를 이어간다. 인물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극적인 변화를 맞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언어로, 그러나 어딘가 텅 비고 어긋난 채로 현재의 한국을 통과할 뿐이다.
결국 겉으로는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회를 뜯어보면, 감정은 지워지고 관계는 기능으로 대체되며, 삶은 점점 측정과 관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무엇이 결핍되었고 놓쳐버렸는지조차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태 뿐이다.
19인의 소설가가 직시한 '지금, 이곳의 우리'는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어딘가에 공허하게 뚫린 부분이 있으나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사회의 여러 요소가 맞물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쉽게 붙잡히지 않는 현실 말이다.
(예를 들어 작품 속 사교육 열풍 역시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선택으로 내몰리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여전히 바쁘게 살고,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한다 믿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단편들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뉴스 기사가 담아내지 못했고, 우리도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공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안락한 착각들에 물음을 던진다.
+이렇게만 말하면 건조하고 서늘한 단편만 가득할 것 같지만 김병운의 「일한 기록」이나 계엄에 대해 쓴 정용준의 「일어나지 않은 일」 같은거 보면 다시 인류애와 눈물이 충전됨.
특히 「일한 기록」은 너무 좋았는데, 청각 장애를 가진 채 20여 년간 성실히 근무하고 퇴직하는 아버지에 대한 단순한 연민에 그치지 않는 점이. 아버지만큼이나 쉬지 않고 일해왔지만, 공식적인 ‘직장’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감사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도 없던 어머니의 삶을 조명하는 게 진짜 너무너무 좋았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이의 시간을 복원해낸다니, 이런게 소설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ㅠㅠ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