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 따는 사람들 서사원 영미 소설
아만다 피터스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시가 행방불명 되던 날, 흑파리들은 유난히 배가 고파 보였다. (첫 문장)


한 원주민 가족이 있다. 캐나다에 살던 그들은 블루베리 따는 일을 하기 위해 미국 메인주로 국경을 넘어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네 살배기 막내딸 루시가 사라진다. 부모님과 4명의 남매들은 루시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또 다른 가족이 있다. 미국 메인주에서 외동딸 노마와 함께 사는 부유한 부부. 노마는 계속 이상함을 느낀다. 부모님은 백인인데 자신의 피부는 거뭇하고, 밤마다 꾸는 꿈에서 들리는 '루시' 라는 이름.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한마음으로 노마의 위화감을 부정한다.



두께를 보고 3일 정도로 나눠서 읽으려 했는데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몰입할 수밖에 없었던 게 책을 펴자마자 첫 챕터에서 애기가 없어졌어, 근데 다음 챕터에 그 애기가 나와, 백인 부부가 걔를 유괴한 거 같음. 스릴러나 추리소설이 아니라서 초장부터 내막이 나온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표지와 제목에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라 안타깝고 초조한 마음으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루시는 언제 돌아오나.


우리가 주로 생필품을 구하러 가는 상점에서 만나는 백인들은 원주민 피는 어쩐지 신맛이 나서 흑파리들이 물지 않는다고, 그래서 블루베리 따는 일에 적격이라고 했다. (p.19)


이야기를 보다 보면 백인과 원주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인은 원주민의 정체성을 지우려 하고, 쉽게 착취하고, 아이마저 빼앗아간다. 갈 곳 잃은 분노와 가족의 상실로 인한 절망 속에서도 원주민들은 잊지 않으려 한다. 엄마가 루시의 작은 신발을 계속 보관하고 있었던 것처럼 잃어버린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외력으로 기억이 잊혔어도 영혼이 정체성을 기억하고 있다. 맞물리지 않는 퍼즐조각이 된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삶에 힌트를 숨겨 길을 만들어낸다. 

그에 비해 원주민 가족의 삶을 파괴한 백인의 말로는 망각으로 끝난다. 피해자들은 기억하고 살아가는데 가해한 측은 망각하며 죽어가는 대비가 서사 후반부터 극에 달한다.



"아니야. 백인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우리에게서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빼앗아 가려고 했어.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하지만 이젠 알았으니까,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 느끼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개자식들이 승리하게 둘 순 없어. 빼앗긴 걸 되찾아야 해. 우리 모두 그래야 해. 그리고 그건 '피테웨이'(pitewey, 미크마크 원주민들의 언어) 가 '차'를 의미한다는 걸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p.393)


조와 노마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개인적으로는 분노에 사로잡힌 조의 이야기보다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노마의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애초에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나 자기 연민에 빠진 조가 이해되지 않았으므로... 결국에는 이런 탕아마저 용서하고 있을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겠지만 '너무 미안해서 그랬다'로는 납득되지 않는 행동들이 있어서, 오히려 노마의 이야기를 더 길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처음에는 조의 시점으로만 서술되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노마가 집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이야기나 엄마의 과잉보호를 읽고 있으면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같기도 하다구... 이 쪽이 훨씬 재밌다구...



기구하다면 기구한 원주민 가족들의 삶을 보면서 슬픔을 기억한다는 것,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평안함을 찾을 수 있으리란 작은 위로가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모든 일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슬픔은 때로 너무 커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 차차 나아져서 유용한 것으로 성장한다. (p.243)


+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거창하게 하지 않는 것이 놀랍다. 무슨 '어제 마트에서 생선을 세일하더라' 같은 느낌으로 "그리고 그날 00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하고 갑자기 징조 없이 죽음이 나와버림. 심지어 장면도 안 보여준다. 원주민의 삶과 죽음이란 너무나 가까워서 그다지 유별난 게 아닌 것 같기도 해 약간 슬펐음.


++ 인생 모른다고 생각한 부분이 어머니가 신을 저주했던 날의 사건으로 인해 간절히 기도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것.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준다는 말도 생각나기도 하고. 


"조, 어떤 사람들한테는 세상의 관대함이 필요하단다." (p.1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이름은 오랑 라면소설 2
하유지 지음 / 뜨인돌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얀 몸통에 점점이 박힌 얼룩무늬, 뾰족한 귀, 밝은 빛에 동공이 좁아진 눈, 그러니까 나는, 고양이다. (p.5)

 

뜨인돌 출판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라면소설] 시리즈는 라면처럼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고 맛있게 읽을 수 있는 짧은 청소년 소설을 표방하고 있다.

'만약 ~라면'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들, 『내 이름은 오랑』은 흔하다면 흔한 '고양이와 몸이 바뀌었는데 내가 누구였는지 잊어버렸다면' 에서 출발한다.

독특한 설정이 아님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이면 집어 들게 되는 이유는 고양이가 너무 귀여우니까...(표지도 귀여우니까...저 위로 솟은 귀여운 꼬리와 솜방망이)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처럼 고양이가 되어버린 학생. 내가 분명 고양이가 아니었다는 건 알지만 이름도, 부모님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반대편도 난리가 났다. 학생이 된 고양이는 원래 학생이 좋아하던 귤은 싫어하고, 입에 대지도 않던 생선을 먹기 시작한다.

  

  

짧고 가볍게 읽히는 소설 자체가 목적이라면 목적에 다분히 걸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읽기에는 너무나 얕고, 묵직하게 좋은 여운을 주는 다른 청소년 소설에 비해서는 확실히 가볍다.

보통 무언가와 몸이 바뀌었다는 주제를 내세운 이야기에서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성, 타인의 삶에 대한 체험과 깨달음인데

『내 이름은 오랑』은 고양이의 삶과 사람, 특히 중학생의 삶 자체만을 가벼이 비교하는데서 그친다. 

각자의 삶에 있어서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나오지만 그저 주변인 정도이고, 핵심은 고양이와 인간의 삶에는 이런 차이가 있는데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듯하다.

 

 

청소년, 특히 책을 거의 접하지 않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가볍게 자극하며 쉽게 발걸음을 떼도록 하는 데에 있어서는 좋은 시리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라면같은 소설이다. 빠르고 가볍고 영양가는 조금 부족하지만 먹는 동안 맛있었고 즐거운 기분. 큰 여운이 남지는 않더라도 즐겁게 읽은 감정이 남는 경험에서 아이들은 독서의 첫출발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쓰기는 고도의 지적 성취를 요구한다. 그것은 글쓰기가 지니는 종합적이면서도 총체적인 특성 때문이다. 글쓰기는 사고력과 읽기 능력을 전제로 한다. (p.25)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시절 아예 재택근무로 바뀌고 사람들과의 모든 소통을 메신저로 했었을 때가 있었다. 각종 업무 지시를 글로 받고 내렸어야 했고, 그때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 글쓰기의 중요성이었다. 

유창한 언변을 가졌다고 글을 다 잘 쓰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다시금 되물을 때가 많았고, 업무가 애매하게 전달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크로스체크 할 때도 다반사였다. 

(문장력 말고도 맞춤법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건 예삿일이었는데 그때마다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좌물쇠'...)


 


그런 글을 자주 보다 보면 나도 엉망으로 이해 안 되는 글을 보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메신저도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고 정말 중요할 때는 맞춤법 검사기도 돌려봤다. 혼자 보는 일기나 이런 기록 같으면 그냥 쓰면서 '크으 내 문장에 취한다' 하면서 뚱땅뚱땅 쓰는데 그런 얼렁뚱땅 의식의 흐름을 상사한테 펼쳐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글을 쓰는 능력은 죽기 전까지 삶에 있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문장력을 위해서는 세 가지 정도를 갖추면 된다. 우선 비문(非文)을 쓰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는 것이다. 마지막은 문장을 짧고 간소하게 쓰는 것이다. 세 가지는 서로 연관돼있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짧아지고 비문이 줄어든다. (p.63)


글은 막힘없이 잘 읽힌다.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매끄럽게 잘 읽혔던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유시민, 생각의길) 이었는데, 그만큼 잘 읽힌다. 그 책에서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단문으로 일단 내지르'(84)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도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기를 권한다. 두 권 모두 그런 문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읽기 쉬운 것이 아닐까. 심지어 예시조차 쉽고 재밌다. 


특히 부록으로 역대 한터 온라인 백일장 논술·작문 당선작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게 진짜 재밌다.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같이 현 정치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카카오톡 문자로 해도 된다는 주장에 대해 찬반 의견을 밝히고 그 이유를 논하라> 같이 눈을 떼기가 힘든 주제도 나오고 작문 분야에서는 <'갓생' '삼귀다' '오히려 좋아' '식집사' 단어들을 포함하는 작문을 작성하라는데 이야 한터 백일장 진짜 재밌는 곳이었네... 구경 갔다가 우수작까지 읽고 옴.


-미쳤음. 짱쎔


 

표지에는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라고 쓰여있지만,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메신저를 달고 사는 많은 현대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영상 매체가 가득한 시대에 글 자체는 고루하고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쓸모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매일 문장을 쓰고 주고받으며 살고 있고, 좋은 글은 빠르고 정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경제적 도구이기도 하다. 글쓰기 노동을 하는 관련업 종사자가 아니라도 본인의 문장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 책에서 충분히 유용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것이다.



+ 사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으면 기록을 남길 때 더 조심스럽다. 평소엔 '아잇 몰라 그냥 갈겨' 하면서 쓰고 다시 잘 보지도 않을 문장을 두 번 세 번 읽게 되어버령...


읽으면서 생각을 벼리는 버릇을 들이려면 슬로 리딩 slow reading을 해야 한다. 속독법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내 생각에 대부분의 속독법은 속임수에 가깝다. 속독이 가능한 경우는 해당 내용과 주제를 너무 잘 알 경우로 국한된다. 독서는 결국 저자와 독자의 대화다. 독서를 하면서 저자의 얘기에 일방적으로 빠지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저자의 주장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펴지 못한다. 저자에게 계속 물어야 좋은 독서다. 물어볼 시간을 확보하려면 천천히 읽어야 한다. (p.44)


짧고 간소한 문장을 쓰려면 명사와 동사 위주로 써야 한다. 명사와 동사는 실체가 있는 품사다. 명사와 동사 위주로 쓴 문장에는 힘이 있다. (p.65)


문장력이 좋아서 글이 매끄럽게 전개된다면 작문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문학 작품을 많이 읽어서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 능력을 적절히 활용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런 능력들이 없어도 충분히 잘 쓸 수 있다. 꾸준히 갈고닦으면 꽤 괜찮은 수준의 작문을 쓰게 된다. (p.227)


작문을 쓸 때 개인의 경험 속에 나타난 인간의 보편적 특징을 잘 잡아내면 통찰력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이때 무조건 솔직하게 자기 경험을 토해놓는다고 해서 좋은 글이 되는 건 아니다. 대신 글을 읽는 사람들과 공유할 요소를 최대한 늘려야 고백적인 글이나 경험을 쓰는 작문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공유할 요소를 늘리려면 개별적 존재 속에 녹아 있는 보편성을 찾아서 또 다른 개별자인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 (p.247)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의 상처가 폭발할 때 비유는 필요 없다.' 라는 김혜순 시인의 추천사. 정확히 그대로의 작품이다.

13개의 단편 전부 한꺼풀의 포장지조차 없는 날 것이며 냄새가 나고 대담하다. 소설이 아니라 어떤 아이의 삶을 그려낸 다큐와 같기도 하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막히고 타인의 간섭을 배제하는 공간, 신성시되며 지극히 사적으로 여겨지므로 누구도 들여다 볼 생각조차 안 했던 그 공간 속의 비릿한 폭력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단편 내내 대체로 성적 폭력이 잔혹하다는 특징이 있는데,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약한 자인 여성의 몸은 쉽게 침범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창녀라는 프레임을 씌워가며 너무도 쉬이 파괴된다.



폭력의 객체는 여성이다. 그러나 폭력의 주체는 성별 불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대물림 되는 폭력의 끝은 쉽게 그 곳의 가장 약한 자인 여성을 향한다. 약자인 여성도 더욱 약한 자인 여성을 그저 바라본다. 혹은 폭력을 휘두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습된 무기력이며 아버지(남자)를 꼭대기에 둔 가부장적 구조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 폭력을 휘둘러야하는 이유는 수만가지가 생겨나는데 그 누구도 그것을 멈춰야하는 이유는 찾지 않는다.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면 사람들이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살갗이 찢긴 자국들을 보며, 방어할 수 없는 이에게는 잔인함이 항상 이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p.126, 『상중喪中』)


그리셀다 아주머니의 집은 이 단편집이 그려내는 폭력 그 자체의 공간이다. (『그리셀다』) 예쁘고 반짝거리고 미키 마우스 모양,인형 모양, 곰돌이 푸 모양의 케이크가 있는 마술같은 그리셀다 아주머니의 집. 보기에는 아름답고 좋은 공간이지만 코 끝에는 오래 묵은 냄새가 난다. 먼지 냄새가 자욱하다. 사람의 눈은 블라인드로 내려 가릴 수 있고(『블라인드』), 예쁜 케이크로 현혹시킬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실제로 썩어가는 냄새는 숨길 수 없다. 밖에서 멀쩡해보여도 그 은밀한 내면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p.33, 『괴물) 하는 공간. 깨고 나면 그만인 악몽이 아니라 깨어서 더 선명하고, 어디로도 벗어날 수 없는 집.


우리는 역겨운 것, 구역질 나게 하는 것, 더러운 것을 혐오하고 보기 싫어한다. 작가는 감추어진 폭력을 드러내는 현장에 사람들이 가장 보기 싫어하는 배설물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p.208, 옮긴이의 말)


종교 역시 사방이 막힌 가정과 같이 은밀한 폭력의 장이자, 여성 착취 구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주체가 된다. 여성은 그 안에서도 외면당하고 가장 신과 가깝다는 이 역시 남성을 위해 여성의 고통에 발벗고 나서지 않는다. 허울 뿐인 기도는 어느 여성도 구원하지 못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 그 자체같은 자비와 함께 자신의 죄책감을 놓고 간 성스러운 남자(예수)는 여성만 남음으로서 자유를 찾은 집 안에 다시 남자를 부활시켜 돌려보낸다. (『상중喪中』) 



작가는 대담하며 솔직하다. 어떠한 꾸밈과 비유가 없다. 가장 아래에서 가장 강한 자를 향해 소리를 낸다. 그 메시지를 못 알아들을 사람은 없다.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이야기를 모른다 할지라도, 결국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전달이 된다. 아는 이에게는 고정관념이 이중으로 깨지는 경험을 하게 하고.

 

 

나는 대담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특히 가장 약한 자가 권력 최상층에 그저 몸으로 밀고나가 부딪히는 것을 좋아한다. 어떠한 비상구 없이, 안전장치 없이. 그 날것같은 외침, 더러운 자의 손에서 벗겨지는 고상한 자의 향기로운 베일과 그 안의 오물들이 드러나는 순간. 그리고 이 책은 정말로 그 자체의 책이다. 매 단편이 이 작가가 쓰는 마지막 이야기인 마냥 그 안에 절제와 망설임은 없다. 이야기의 힘이 강해서 읽는 중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게 하는 책이다.


 



+ 진짜 너무 좋은 책이다. 너무너무. 어떤 좋은 책은 읽고 나면 하고 싶은 말이 한바가지로 쏟아지는 데 어떤 충격적인 책은 읽고 나면 사고를 정지시킨다. 『투계』는 그런 책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내고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들이 작가가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충고했다. (첫 문장)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데, 그냥 맛이 없기 때문이다. 술 마실 바에는 커피를 더 먹지. 대학 신입생 때는 멍청하게도 잘 마시는 게 좋은 건 줄 알고 선배들이 주는 술을 족족 받아마시면서 예쁨 받는 게 무슨 삶의 목표인 사람 마냥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주량이 약하지는 않아서 큰 사고 없이 잘 먹었고, 그 덕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평생 먹을 술 대학 다닐 동안 다 마신 것 같다. 지금은 몸에도 안 좋은 거 맛까지 없어서 안 먹지만. 


그런데 갑자기 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느 날부터 드라마, 예능에서 우후죽순으로 대놓고 튀어나왔다. 그게 있어야만 시원한 대화가 된다는 듯, 술에 취해 저지른 실수는 낭만의 한순간이 된다는 듯. 그런 이야기들이 술을 다루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사람을 취하게 만들어 진심을 끄집어내기',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즉,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체로 이렇게 취하고 저렇게 구르고 술을 병나발로 불면서.



하지만 그렇게 맛난 홍어도 술 없이 먹으라 하면 화가 벌컥 난다.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낫다. 북청 물장수의 숫자관념이 '통'과 '냥'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듯, 술꾼의 미각도 안주 아닌 음식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p.8)


술 대신 커피라는 입장을 가진 측에서 술이 부러운 것은 단 하나이다. 안주의 다양성. 술안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만두, 탕, 전 심지어 치즈와 빵까지. 그러나 커피는? 만두와 아메리카노...? 어묵탕에 카페라떼...? 이런 부분이 아쉬워서 자꾸 술과 관련된 산문들을 찾아보게 되는 것 같다. 와중에 이 책을 보게 되었고, 목차가 정확히 술꾼이 아닌 내 취향에도 맞았다. 술보다 안주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 특히 입이 짧은 권여선 작가가 소주와 함께 하는 안주로 입맛을 키워왔다는 부분은 부럽기만 하다. 소주를 잘 마시면 저자처럼 삭힌 홍어도 먹을 수 있게 될까. (하지만 소주든 사케든 정말 맛을 모르겠다...)


삐득삐득 고등어 중 한 마리는 바작바작 굽고 한 마리는 감자 깔고 떙초 넣은 양념에 맵게 조렸다. 생선을 말리면 살이 단단해지고 깊은 맛이 난다. 뜨거운 밥 한술에 구운 고등어 살을 뜯어 먹는 맛은 기름지고 고소하고, 소주 한 모금에 땡초 곁들여 조린 고등어 살을 먹는 맛은 배릿하고 칼칼하다. (p.200)


술꾼을 자처하는 작가의 산문은 소탈하다. 여러 안주에 곁들인 이야기에서는 훈기가 가득한 사람 냄새가 난다. 술에 대한 산문이라 환한 마음으로 즐겁게 썼다는 글들에서는 읽기만 해도 입맛이 싹 도는 메뉴들이 가득하다. 프로슈토, 카프레제, 브루스케타 이런 해리포터 주문 같은 음식보다 냄비국수, 감자탕, 고등어, 부침개 같이 아는 맛이라 먹지 않아도 맛과 향이 감도는 안주들이다. 

작가가 말하듯 이 책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뉴판' 그 자체이다. 만일 내가 술을 즐겼고, 조금의 요리 솜씨만 가지고 있었다면 매일 그날의 안주에 맞춰 먹으면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첫날에는 순대, 둘째 날에는 만두, 셋째 날에는 김밥. 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인데도 안주가 먹고 싶어서 술을 당기게 하는 글을 보자니 작가님은 진짜 술꾼이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원래 영업은 이거 좋다고 좋다고 남 붙들고 설득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엄청 맛있게 먹고 있으면 주위에서 알아서 영업당하는 거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술꾼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진짜 술꾼이 아닐까. 제철 따라 안주를 찾고, 모든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는 낭만이 있는 사람.



+ 맛있는 술은 마신다. 과일 소주나 스파클링 와인 같은.



각자의 혀에는 각자가 먹고살아온 이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혀의 개성은 절대적이며, 그 개성은 평균적으로 봉합되지 않는다. (p.136)

봄에 싹텄던 것들은 여름에 왕성히 자라 마침내 가을이면 완숙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맛에 있어서만은 가을이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절정의 계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 절정은 단맛으로 표현된다. 모든 먹을거리들은 가을에 가장 달콤해진다. (p.143)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한 식구食口란 음식을 같이 먹는 입들이니, 함께 살기 위해서는 사랑이나 열정도 중요하지만, 국의 간이나 김치의 맛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p.170)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