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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신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 도시로 숨 쉬던 모던걸이 '스위트 홈'으로 돌아가기까지
김명임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그러나 한번 거리로 나선 여성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성들은 살아남는다. 여성들은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K양을 사랑하는 T군이 있다. K양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다. 자유연애라는 개념이 들어온지도 얼마 되지 않아 연애를 하고 싶긴 한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T군은 일단 K양을 자신의 하숙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면도칼을 꺼낸다. 자신의 왼손바닥을 긋는다. 피를 뚝뚝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K양이 뜨거운 키스를 해주리라 믿는다(어째서?). 그러나 K양은 울면서 돌아가버리고 T군은 파출소로 호출된다.
잡지 <신여성>에 소개된 일화이다. 묵묵히 부모가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는게 아니라 자유연애라는 개념이 들어오고 서구의 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던 그 시절. 틀어올린 머리 혹은 단발에 짧은 치마, 구두와 목이 긴 양말, 학교에 다니고 유행의 변화에 민감했던 신여성. 권투에 열광하고 거침없이 담배를 피우며 이 잡지를 읽던 그 신여성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해당 책은 잡지 <신여성>을 통해 보이던 시대상과 여성들의 변화, 이 변화를 바라보고 바른 방향으로 '계몽'하려는 남성들의 시각과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신여성'들에게 씌워지는 각종 프레임들을 선명히 보여준다.
잡지는 소비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상업지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신여성/모던걸을 낭비적 소비의 주체로 인식하고 비난했다. 화장품과 화장법에 관한 시시콜콜한 기사를 내보내고 세련된 맵시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여성이 옷차림, 머리 단장, 얼굴 치장 같은 물질적 향락과 사치에만 열을 올리는 '못된 걸' 이 되어간다고 비난했다. 거기에, 먹여주고 입혀주기를 바라는 의타적 심성이나 세속의 헛된 명예를 얻고 싶어 하는 천박한 허영심이 신여성의 소비를 조장하고 정신을 타락시키는 원인이라는 심층적 분석까지 내걸었다.
김기전은 조선의 학교와 사회가 교육받은 여자로 하여금 사회에서 나름의 새로운 직분을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의 능력과 시야를 함께 함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직분을 좀 더 맵시 있고 슬기롭게 수행하도록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들의 소비는 허영이 되고, 사회에 진출해보려는 첫 걸음은 헛된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천박함이라고 치부된다. 여성들을 위한 잡지이자 소비를 부추기는 매체인 <신여성>에서조차 이러는데, 다른 사회적 시선이라고 고왔을까. (솔직히 말하면 한문장 한문장 떼어다가 글 쓴 사람을 요목조목 쥐어다 패고 싶음)
이중성과 여기에 쏟아지는 각종 맨스플레인들. 그들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정숙할 것과 엄마가 될 준비를 강요하고 여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비난의 화살을 돌리면서 엄마가 된 사람들에게는 또한 가정에 충실하고 슬기롭고 현명한 엄마가 될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 지금이라고...뭐가 다르지...? 현재도 여성이 향유하는 문화들은 쉽게 후려쳐지며 그 문화를 제공하는 자들도 여성을 쉽게 무시한다. 핑크텍스는 너무나 만연하고 여성이 좋아하는 SNS 유행 카페는 허세의 상징처럼 비춰진다.
일반 여성의 향학열이 높아져 '학교'가 대세가 되었고 1926년 정도에 이르면 "늙어가는 몸으로 인력거를 끌어서 딸의 학비를 대어주는" 부모가 등장하고, (···)
그런데 이번에는 송계월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아버지가 여럿이라는 소문이 났다. 문제는 그것이 "한낱 서울 거리의 불량 청년들 사이에서" 나도는 뜬소문이 아니라 무려 카프KAPF의 문인이었던 이갑기가 <여인>이라는 잡지를 통해 말했다는 데 있다.
또 이런 말도 한다. 아들은 온 집안이 노력해서, 부모가 밤낮으로 일하고 딸이 공장에서 노동력을 갈려서 학교에 보내는 것을 미덕처럼 여기다가, 딸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니 부모의 늙어가는 몸을 강조한다. 늙은 부모가 저렇게까지 노력해서 보내야 하는가, 단지 '대세'를 따르기 위해 가족이 희생하는게 맞느냐고 묻기 시작한다. (솔직히 너무 열받음. 하고 싶은 말만 한 솥이 나와서 다 못씀)
심지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지 않는 여성, 사회 구조를 저격하는 여성에게 문란하다는 프레임을 씌워버리는 것도 얼마나 저열한가. 그리고 이 사회는 저 때와 얼마나 다른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여성의 외모와 성적으로 공격하는건 지금도 너무 흔해서 예시를 들기도 입 아픈데 아주 유구한 역사였구나^^
서양식 담배 역시 새로운 기호품이었고, 아직 그 기호품 애용에 남녀 구별이 정착하기 이전이라 여성의 흡연에 대한 비난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사실 무거운 이야기가 많은 것 같지만 그 시대의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사회 설명이 재미있다. 호떡을 먹는 남학생들, 옹기종기 모여 같은 하숙집에 사는 친구들끼리 군고구마를 까먹는 여학생들의 모습도 절로 그려진다. 맥주도 그 시절에는 음료로 여겨져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삐루 5잔'(!!!)을 권고했던 시대라니.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담배가 막 들어왔을 그 시절에 오히려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 대한 비난 어린 시선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사적으로야 담배를 피우는 것이 흠이 아니라지만 미디어에서 공연히 금연을 다짐하고 흡연을 당당히 밝히는 남성 연예인들과 달리 여성들이 그랬다가는 당장에 '흡연 논란'이라는 헤드라인이 달린다. 예능에서는 여전히 "너 담배 피워?"가 개그라는 껍질을 쓴 비난으로 사용된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인지 퇴보한건지 물어봐야만 아는 문제는 아닌거 같다.
채 100년도 지나지 않았다. 짧으면 짧다지만 길면 긴 시간인데 계속 현 시대로 읽힌다. 주어는 여성이지만 남성과 사회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는 그 때에 비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불온함'에 대해서 너그러워졌는가. 여성만의 역사가 아니기에 혼자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리를 맴돈다. 역사는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교차이기에 널리 읽히고 같이 답을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 여성 교육이 시작되고 진행될 수록 여성들의 가정 복귀 비율이 줄어든다. 지금까지 가정에 묵묵히 힘을 다해왔던 여성들이 많았던 것은 그저 배움의 기회와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흔히들 '요즘 여자들은 옛날과 달라 이기적이야' 이러지만 예전에는 그럴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