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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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동양의 향신료를 원했고 이들의 욕망은 세계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p.34)


학생 때 '실론티' 캔음료를 좋아했었다(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다). 과장 조금 보태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자판기의 실론티를 몽땅 털어간 건 나였을 것이다. 확실하고 일관된 취향에 친구들이 그냥 갖다주기도 하고 생일 선물로 실론티 다발, 미안할때도 실론티, 부탁할 때도 실론티. 심지어 모르는 애들도 실론티를 주곤 했었다. 내 사물함에는 온통 실론티로 가득했다.



이 실론ceylon은 현재 스리랑카이다. 스리랑카는 차茶로 유명한 나라인데, 무려 440여 년 동안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지로 살아온 역사가 길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오로지 '향신료' 때문에. 향신료는 동양보다는 서양에 더 큰 영향을 미쳤고 향신료에 눈이 돌아버린 유럽 열강들은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오로지 향신료만을 바라보고 목숨을 던져 항해하고 전쟁을 했다. 수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말로만 전해지고 실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 '스파이스제도'를 찾는 과정 속에서 짓밟혀 나갔고,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가 등장했고 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검은 보물'이라 불리는 후추 한 알 값이 진주 한 알 보다 값이 나갔었다니 탐욕이 세계사를 뒤흔들고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멜 표류기>로 익숙한 하멜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이었으며 향신료 도둑 이야기, 향신료의 확보를 목적으로 항해하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 이야기 등은 낯설지 않지만 향신료를 중점으로 파고들어본 적이 없기에 새로웠다.

심지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정확한 수치가 나오니 더더욱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실감이 되면서, 그럼에도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의 의지에 감탄하게 된다. 탐욕이니, 생계니 어쩌니 해도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서쪽 항로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마젤란 선단은 270명이 5척의 배를 타고 출발해 한 척의 배와 18명이 돌아왔다. (p.120)



사실 인간으로서의 용기고 뭐고 사실 동인도회사의 무자비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무자비한 식민지 경영, 오로지 서양인의 탐욕을 위해 약탈당하고 학살 당했던 많은 식민지 국가들. 예를 들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얀 쿤은 군대를 몰고 가 런섬을 초토화 시켰다. 남자는 모조리 살해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로 삼고 추방시켰으며 모든 육두구 나무는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 섬 뿐만이 아닌 반다 제도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솔직히 여기서 네덜란드가 '한국이 광화문 네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얀 쿤의 동상을 만들어 기리고 있다(물론 학살자, 살인자라는 네덜란드인들의 평가도 있음)고 하는데, 비교 자체가 진짜 이순신 장군한테 폐도 폐도 이런 폐가 아닐 수가 없다. (물론 저자가 비슷하다고 비교한거 아님)

이순신 장군은 쳐들어온 왜군을 쫓아낸 사람인데 얀 쿤은 그저 학살자에 섬 파괴자에 국제법 상 약속이고 뭐고 휴전 깃발을 꽂고 비무장으로 온 상대국가의 최고위 인사를 저격한 자 아닌가. 그저 향신료 독점 거래 하겠답시고 행한 학살 속에서 반다 제도 1만 5000명의 인구 중 1000여 명만 살아남았다는 걸 어떻게 애국자, 영웅으로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타국인의 눈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나는 이것이 자국의 위인이라도 비슷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제노사이드의 주범을 그렇게 기린다는 건 국가이미지에도 타격 아닌지...


쿤은 동인도제도, 즉 지금의 인도네시아 말루쿠해의 반다제도에 살던 원주민을 말살한 제노사이드의 주범이다. 여태껏 세계사에 있었던 인종 말살 제노사이드는 정치적 이해관계, 또는 종교적 충돌 등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얀 쿤의 학살은 향신료인 육두구의 독점 거래 때문에 일어났다. (p.231)


해당 저서는 향신료를 중심으로 유럽사를 톺아볼 뿐이지만 그 '향신료 탐욕사'가 곧 세계사의 굵직한 흐름을 이끌어간다. 경제적 부를 보여줌과 동시에 권력을 상징하게 된 향신료. 인간의 탐욕으로 읽어 내리는 전쟁사가 퍽 매력있었다.


+ 토종이 아닌 청양고추 이야기는 아직도 너무 슬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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