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지기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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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절망할 권리는 있지만, 인간 자체가 오염됐거나 타락했다고 선언할 권리는 없다. (p.135, <기억에 대해>)


좋은 뉴스를 듣기 힘든 요즘이다. 세상은 싫고, 정치사회면은 마음에 안 들고 '살다'라는 말보다는 '살아내다'라는 말이 더 없이 어울리는 시기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고 무엇의 탓하기 쉬울 때 헤르만 헤세는 '여전히 이 미친 세상과 사랑에 빠져 있다 (<가지치기를 한 떡갈나무> )'고 한다. 헤세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보물같은 선집이겠지만, 잘 모르던 사람에게도 부드러운 흔적을 남겨줄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나)


지금껏 거의 다섯 세대 전부터 헤세를 읽는 독자층은 주로 14~35세 사이의 젊은이들이다. 아직 이상을 꿈꾸고 사회에서 되도록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말이다. (p.12, <들어가는 글)


독자층만 보더라도 헤세의 글에서 무엇이 전달되는지 알 수 있다. 자신을 아직 찾고자 하고 변화를 꾀하는 젊은 층과, 생업에서 은퇴한 노년층. 그러나 오히려 사회 기득권을 형성하는 연령대는 보이지 않는다. 헤세가 개인의 고유성과 양심에 대한 질문을 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개별성을 옥죄고 사회의 틀에 억지로 맞추려는 강제력에 저항한다. 그럼에도 모든 화살을 사회에 돌리고 밖을 공격하기 보다는 내면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알을 깨고 나오게끔 하면서 억지로 스스로를 판단하거나 바꾸지 않고 나 자신으로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사물을 향한 분노와 초조, 비난과 증오는 고스란히 내게로 다시 돌아온다. 증오를 받아야 할 사람은 나이기 때문이다. 불화와 추악함을 세상에 가져오는 사람도 나이기 때문이다. (p.305, <방랑>)


사실 주제만 떼놓고 보면 특별할 거 없는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내 주변 세상은 바뀌지 않고 타인은 내가 아니다. 평안을 찾기 위해서는 결국 나를 찾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인데 헤세는 이를 설득력 있게 말하면서 세상을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 스스로도 '미친 세상'이라고 부르는 외부 세계와 사랑에 빠지는 법. 가끔은 우울함과 분노가 몸 속을 돌고, 나 자신이 싫어지더라도 그조차 나 스스로임을 인정하고 안정과 고요를 찾기를 바라는 헤세의 글을 보며 불교 관련 서적을 읽을 때와 비슷하게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세상을 사랑하는거 그거 어케 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 번 해보겠슴다


++ 워낙에 짧은 글들이라 자기 전에 머리맡에 두고 하나씩 읽기 좋았다. 꽤 괜찮았어서 다음 '열다' 시리즈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궁금함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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