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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의 감각 - 의식의 본질에 관한 과학철학적 탐구 ㅣ Philos 시리즈 26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박제윤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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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맹이에 눈코입만 그려도 정을 주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안 팔리는 빵 봉투에 우는 이모티콘을 그리니 사람들이 많이 사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람은 타인에게 쉽게 공감한다. 특히 인간과 포유류에게. 아이의 울음에 같이 안쓰러워하고 학대받는 동물을 보면 같이 고통스러워한다. 그럼 물고기처럼 비명을 지를 수 없는 생물들은 어떨까. 저자가 의식을 연구하는 이유 중엔 이런 생물들에 대한 잔혹한 행위를 돌아보고 반성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그들 역시 고통스러운 자극에 반응한다면, 의식이 있다면 사람들이 끔찍하고 무분별하게 포획하고 살상할 수 없을테니까.
그럼 이 의식이란 무엇일까. 신경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 의식은 경험이다. (p.23)
경험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의식하는지 부터 풀어 나간다.
저자는 가추추론 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주장을 풀어나가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유력한 가설을 추론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달을 볼 때 달토끼, 광원 등 달의 모든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일부만 보이더라도 달이라고 생각하지 않은가. 혹은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가장 그럴싸한 이유를 추론하는데 이런 것이 가추추론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생각들이 추론의 한 방법이었다니.
가장 관심이 갔던 파트는 동물 의식 관련 부분이었는데, 달라이 라마와 저자의 입장 차가 인상적이다. 불교에서 생명은 체온과 지각력, 즉 감각하고 경험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정의되므로 모든 생물이 고통받을 수 있어 소중하다고 여기는 반면 저자는 일부 동물만이 지각력과 의식적 경험이라는 재능을 공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머릿속에 문어 선생님만이 꽉 찬다. 문어 선생님 진짜 의식 있는거냐고 없는 거냐고 짤짤 흔들고 싶다. 아니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낙지인가도 있지 않은가...우리 문어...있다구...나랑 감정을 교류하는게 맞다구... 저자는 무척추동물인 문어에게는 의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인 것 같지만. (「센티언스 : 의식의 발명」역시 같은 입장)
그렇다면 약간 비틀어보자. 생명이 아니라면 의식이 있을까. 컴퓨터는 경험을 가질 수 있을까. 인공지능에는 의식이 있어 인간처럼 느낄 수 있을까. 저자와 의견이 비슷하여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인간과 같이 느낄수 있을까. 지능과 경험이 같은 개념이 아닐진대, 지능이 높다 하여 다 생명일 수는 없는 일이다.
10번째 주제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환자들이 말하는 마음이 거의 항상 좌측 대뇌피질 반구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재밌고, '외계인 손 증후군'이 떠오르는 '좌측 마음이 원하는 것과, 우측 마음에 의해 통제되는 신체의 왼쪽이 원하는 것, 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214)도 재밌는데, 뇌를 만일 다른 뇌들과 연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의 뇌를 연결하여 단일 의식으로 통합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하나의 군집이 되는 미래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진짜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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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법칙에 의해서만 제한되는 셋, 넷, 또는 수백 개 뇌를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뇌가 완전체로 합쳐지면서, 각자의 고유한 능력, 지능, 기억, 그리고 기술 등이 점점 더 커지는 초월적 마음에 추가될 것이다.
나는 더 큰 완전체를 위해 개성을 포기하는, 초월적 마음을 추구하는 사이비 종교와 그 종교 운동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한다. (p.218)
솔직히 말하자. 중간부터 어렵다. 명쾌하게 '의식은 경험이다'라고 하고 쉬운 초반을 지나 통합정보이론(IIT) 파트에 이르면, 저자가 갑자기 신나게 개념 설명도 없이 이론의 장점부터 언급한다. 결국 IIT는 구글의 도움을 받아 읽어 나갔다. 이게 왜 기초이론이고 왜 탁월하고 심오한지 초장에 이 책 하나만으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옥장판 갖고 와가지구 이게 어떤 도구인지 설명은 안해주고 냅다 '아~~~이게 참 좋은데~ 아유, 이게 좋은디~'하는 느낌. 신난 교수님을 멍하니 쳐다보는 학부생의 느낌을 오랜만에 받았다.
최근에 읽었던 '센티언스 : 의식의 발명'이 초반부 개념만 잡고 넘어가면 꽤나 난이도가 쉬웠던 것과 비교가 되었다.
+ 아르테 공식 인스타 계정에 편집자 J 님께서 필로스 시리즈 중 '의식'을 주제로 한 4권의 도서를 간단하게 정리해주신 피드가 있는데 천재같음... 언젠가 북토크(를 가장한 강의) 해주세요...
++ 열심히 노션으로 정리해가며 읽었다. 그냥 읽으면 머릿속에 1초도 남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서술 방식이 도움이 꽤 되었는데, 주제 들어갈 때마다 첫 문단에 하고자 하는 말을 정리해줘서 그 주제에 포인트를 맞춰 읽으면 그나마 길을 잡아 더듬어 나아갈 수 있었다.
* 해당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