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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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어떠한 보상보다도 책임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더욱 원한다고 꾸준히 말해온 사람들에게, 그토록 원하던 대답을 들려주길 바랐다. 그들을 만족시키는 일이 지구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사과받아 마땅했으므로.

p.89,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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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기이현상청 사건일지』에서는 한국이기에 가능한 설정의 시작과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고, 『SF 보다 vol.2 벽』에 수록된 「깡총」에서는 거대한 세계관의 구축 없이 현실의 속성 단 하나 만을 살짝 비틀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함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이번 초단편집 역시 좋았다. 언뜻 현실과는 접점이 멀어 보이는 SF면서 내가 최근에 읽었던 그 어떤 소설들보다 현실을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었다. 단편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치사회적 뉴스들이 있었다. (자세히 이야기하기엔 작가님이 ‘열세 번째’에서 내내 걱정하고 있는 압수수색을 당할까 무서워서 말을 못하겠다. 솔직히 이게 초단편인 이유가 납득이 됨. 만약 얘기가 더 길어지면 진짜로 작가님 블랙리스트 오르는거 아니냐며…😢)

소설을 읽다 등골 서늘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귀신이 나오는 것도,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펼쳐놓는 것도 아니라 읽다 보니 현실이 선명하게 보이는 때 일 것이다. 희망도 공감도 현실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실 감각 없이 외치는 공감과 치유란 얼마나 덧없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시작점에 위치한다.


해당 소설들은 12와 연관이 된 주제들로 집필이 되었다. 읽으면서는 이게 어떤 12일까 했는데, 해설을 보니 황도 12궁, 올림푸스의 12주신, 십이지와 쿼티 키보드 12개의 기능키 등의 속성이 들어있었다. (사실 「새로고침」 외에는 눈치 못 챘었음.) 초단편임에도 오랜 기간 특정 주제를 가지고 짜여진 소설들이라 내용에서 주는 재미 외에도 구성에서 오는 치밀한 매력이 짙은 책이라 다방면으로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이다.



+ 아니, 「열세 번째」 이야기를 한 김에. 나는 당연히 평범한 작가의 말인줄 알고 읽었는데 구조 무슨일…? 꿈에서 깬 줄 알았는데 여전히 돌아가는 인셉션의 팽이.


++「새로고침」, 「지구돋이」, 「증오가 명예로웠던 시절에」가 너무 좋아서 필사하면서 읽었는데, 특히 「지구돋이」는 인간의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여 오싹한 분위기를 내는 게 좋았다.누가 읽든 상상하는 바는 전부 달랐겠지.




■“우리가 먼저 묻고 싶은데요. 눈앞에서 친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면, 비서관님께서도 일단 구해내려고 뭐든 하실 거잖아요? 그러면서 왜 곳곳에서 다른 이유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먼저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p.26 「그땐 평화가 행성들을 인도하고」


■과학기술은 때로 우리를 좌절시키고, 신은 절대 우리의 편이 아니며,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대체 불가능한 터전을 치명적인 살충제와 온실가스와 핵무기 따위로 망쳐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p.77 「지구돋이」



* 넘나리2기 자격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읽은 뒤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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