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내 성격이 결정되고 있구나, 라는 걸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대학생 때였습니다. 그날도 저는 도서관에서 공부할 책들을 잔뜩 쌓아 놓고 소설책 속으로 도피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집어 든 책은 한강 작가의 <검은 사슴>이라는 책이었어요.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어둠 속으로 푹푹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의 풍경이 아직 생생합니다. 겨울 해는 이미 졌고, 제 세상은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그 어두움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우울하거나 괴로운 감정이 아니었어요. 어두운 장롱 안에 숨던 어린 시절처럼 어둠의 세계에 안착한 느낌? 제 속에 어두운 자아가 이 책 덕분에 깨어난 것 같은 느낌? 그 자아를 이 책이 다 껴안아주는 느낌? p.28 오독의 발견
쉬는 날이라 침대에서 좀 더 뒹굴다가 일어났다. 포근한 로브로 몸을 안아주었다. 내 기척을 느낀 감귤이가 귀엽게 칭얼대는 소리에 힘을 얻어 습식사료를 챙긴다. 커피를 마시며 저 대목을 읽었다. 확실히 책은 내 성격을 바꾸었다. 난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 주의지만 800권의 책, 그리고 그 과정에 사람들과 나눈, 삶과 결부된 책 이야기는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내가 인지할만한 변화는.
나에게 책은 일종의 로브다. 언제든 내가 손만 뻗으면 날 감싸 안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위로.
언젠가 스릴러 영화를 뒤적이다가 조내뎁의 '시크릿 윈도우'라는 영화를 봤다. 시종일관 그의 로브에 눈길이 갔다. 꼬질꼬질한 로브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있는 작가 모트 레이니. 심지어 한 쪽 팔 겨드랑이는 쫘악 찢어져 있다. 화면을 정지하고 로브를 검색했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못 찾은 나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끝까지 영화를 감상했다. 반전이 있었는데 없었다. 스릴러를 너무 많이 보면 의심이 커져 손해다. 그래도 역시, 조니뎁의 연기는 더하거나 보탤 것이 없다. 친구에게 그 얘길 했더니 생일날 로브가 생겼다. 로브를 입고 있으면 어딘지 든든해. 방 안에, 책장에 쌓아둔 책을 보면 그러하듯이.

저녁에 데이트를 하게 될 수도 있는데 -오빠 일이 빨리 끝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러 가기로 했다-그 전에 책도 읽고 수업 준비도 하고 집도 치우고 운동도 조금 해야지. 26년 5월 내게 누군가 한강 작가의 책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여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