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 없는 사람이 지는 거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타인의 우물에서 마음을 끌어 올리는 사람들은 오래도록 우물 속을 들여다본 사람들이다. 심연은 오직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만 비밀을 드러낸다. 김애란은 그런 작가다. 그의 글을 읽으며 위로 받았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진실과 거짓은 모두 힘이 있다. 진실에는 거짓이, 거짓에는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완전한 것은 없다.
나는 이해받고 싶은 사람, 그러나 당신의 맨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질치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랑이 '나는'으로 시작되는 사람이 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나는 한번 더 '나는'이라고 말한 뒤 주저앉는 사람,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는 사람,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고 처음부터 다시 말하는 사람이다. 하여, 우리는 흐르는 물에 손을 베이지 않고도 칼을 씻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실천문학' 2004 가을호, 김애란
나는 도로 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울음을 삼키면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면서. 더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에 가게 될 거라고. 믿었다. 아주 잠시면 끝날 거라고. 그런데 왜 울음을 삼키고 있나? 뭐가 서러워서? 뭐가 아쉬워서? 곧 그런게 다 없어질텐데 기쁜 일이잖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대하던 동시에 두려워하던 것은 오지 않고 다른 것이, 사람들이 왔다. 경찰들이.
소란스러운 시간은 지나갔다. 여기저기 몸에 난 상처에 감사했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죽었으리라. 내 소란은 살려달라는, 도와달라는 외침이었으니까.
미루다가 30분 달리기 도전 8주차 버튼을 눌렀다. 2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이제 너무나 친숙해진 남성의 목소리가 '너는 미션을 완수할 수 있노라' 응원한다. 멘트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달리다가 장애물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달리다가 달려드는 개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이 부분에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우리는 장애물을 치우는 데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달려드는 개를 말리다가 자칫 부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달리기를 부추기는 건가 웃음을 부추기는 건가)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계속해서 달리는 것'입니다. 나레이터는 달리기 뿐 아니라 삶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좀 더 진지해진 채로 달렸다.
이건 그 사람이 골라준 책이다. 한 사람과 헤어지고 2년이 되어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그저 숨만 붙어 있는 존재로 살아가던 내게 재밌으니 읽어보라고 책을 내밀어준 사람. 나를 보고 싶어하고 내 목소리를 자꾸만 듣고 싶어 하고 내 컬러링이 바뀐 이유를 궁금해하고 나랑 운동하고 싶어하고 나랑 살고 싶어하고 나랑 맛있는 걸 먹으러 가려 하고 술이 달다고 말할 만큼 인생의 쓴 맛을 아는 사람. 락과 재즈를 듣는 사람. 내가 늘 선망하던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 그럼에도 나를 어렵다고 하는 사람. 나는 더 어려워져서 그 사람의 푸앵카레의 추측이 되고 싶다. 페렐만이 오래도록 내게 사로잡힐 수 있도록. 이렇게 될 줄 알고 서래의 마지막에 그렇게 울었나보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다. 이 시간도 지나갈 것이다. 나는 결국에는 나로 남고, 누구나 그렇듯 바람에 사라질 날이 오고야 말겠지.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달리기로 했다. 욕망하기로 했다. 장애물 때문에 너무 오래 고심하지 않으면서 그저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