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정치, 법, 사업, 환경, 심지어교육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예술, 특히 저항 예술을 통해 표현될경우 관객과 흥미롭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우리가 사는사회에 의문을 던지는 일은, 종종 그에 관한 책을 읽거나 뉴스를보는 것보다 예술작품을 그저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시작되기도한다.
도덕성과 예술은 때로 캔버스를 초월해서 연결된다. 믿음과가치, 도덕률을 도발하고 뒤흔드는 예술은 예술적 자유에 관해,
혹은 사회가 예술을 평가하는 방식에 관해 논쟁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목적은, 주제가 어떻게 해석될지와 상관없이, 그저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석의 자유는 예술가나 사회가그들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한 예로, 대런 올드리지는 괴이한 눈의 사투르누스가 아들을 잡아먹는 장면을 묘사한 고야의 작품과 티모클레아가 강간범을 살해하는 광경을 그린 엘리자베타 시라니의 그림을 볼 때 매우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그림을 관람한이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이런 끔찍함을 바라볼 때 관음증적인충동이 일며, 예술가들은 악행에 대한 이런 섬뜩한 흥미를 이용해 왔다. 관찰자로서의 우리는 창작과 소비라는 긴장 관계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예술가들이 단순히 자신의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잔인함과 사악함을 다룬 예술이 의미 있는 건, 전투나 대량 학살, 성폭행 혹은 좀 더 조용한 위법 행위를 투영한 작품이든 아니든, 이 예술작품들이 결국 논리나 이성, 이념과 분석이해낼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범죄의 동기를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불가해하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심적 부담감이 너무 커졌을 때 예술에서 의미와 명확함을 구하는 일은 요긴하고또 위안이 된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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