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기도 하다. 법은 수세기에 걸쳐 세심하게 말을 다듬고, 치열하게 싸워 사법권의 선을 긋고, 강력한 집행 체제를 확립하며 위력과 명료함을 키워온덕에 육지에서는 대개 아주 견고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바다에서 법은 유동적이며 사실 존재감조차 미미하다.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밀거나 두드리는 동작 한 번에 즉각 너무나 많은 정보가 쏟아져 주변 세계에 관한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지만, 우리가 바다에 대해서아는 것은 충격적일 정도로 적다. 오늘날 세계 인구 절반은 바다에서 160킬로미터 이내에 살고 있으며 세계 상품의 90퍼센트는상선이 수송한다. 세계적으로 5,600만 명 이상이 어선에 몸을 싣고 바다에서 일하며 이 외에 160만 명은 화물선과 탱커선을 비롯한 다른 상선을 탄다. 하지만 이 영역을 다루는 보도는 이따금 보이는 소말리아 해적이나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 소식을 제외하면극히 드물다. 우리 대부분에게 바다란 그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곳이거나 어둡고 밝은 파랑으로 이뤄진 널따란 화폭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는 광활하고 전능해 보이지만, 환경을 위협하는 문제는 지도 제작자가 지난 몇 세기 동안 바다에 멋대로 그려놓은 경계를 넘어 멀리까지 뻗어나가기 때문에 바다는 한편으로 취약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 P15

내 목적은 해상 노예의 딱한 처지를 알리는 것뿐 아니라 공해를 누비는 사람들의 면면까지 생생하게 살리는 것이었다. 자경 활동에 나선 환경 보호 활동가와 난파선을노리는 도둑, 바다에서 활동하는 용병, 반항적인 포경선원, 앞바다의 압류원, 바다로 나가는 임신중지 시술자, 은밀하게 움직이는 폐유 투기업자, 미꾸라지 같은 밀렵꾼, 유기된 선원, 바다로 내몰린 밀항자 말이다. - P16

이들과 대화하며 특히 명확해진 사실은 화물의 해상 운송이 항공 운송보다 훨씬 저렴하고, 그 이유 중 하나는 공해가 여러 국가의 행정으로 어수선한 상태이며 규제에서도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은 조세피난부터 무기 비축까지의 각종불법 행위를 낳았다. 어찌 보면 미국 정부가 가령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해체하거나 테러 관련 구금과 신문 일부를 진행할 장소또는 오사마 빈라덴의 시신을 처리할 장소로 공해를 선택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어업계와 해운업계는 바다 위 무법 행위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 수혜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하다. - P17

바다는 무한의 은유이자 정부의 간섭과 확실하게 분리되어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게는 탈출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감금이다. 사람을 집어삼키는폭풍과 비운의 결말로 끝난 원정, 조난당한 선원과 광기에 찬 사냥꾼으로 가득한 해양 문학의 정전은 망망대해와 함부로 날뛰는무뢰한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서식하는 새처럼 이들은 많은 경우 포식자의 부재 속에 진화하며 지난 수세기내내 멋대로 살아왔다. 지금까지도 그런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에 그려진 소묘로 이런 사람과 장소를 바라보는 우리의인식이 현재에 맞게 제고되기를 희망한다. - P18

때로는 취재 과정이 너무 들쑥날쑥해서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언론 활동이 아니라 주의력결핍장애 경험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정이 길어질수록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단정하게 정돈되는 이야기 또는 옳고 그름과 선인과 악인, 포식자와 먹잇감이 깔끔하게 구분되는 이야기는 하나도없었다. 바다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도 여기저기로 마구 퍼져나가단일하고 직선적인 서사로 욱여넣기 어려웠다.  - P19

이 모든 모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세계의 배에서 목격해 이책에 담아내려 애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서글프리만치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바다와 그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빈번하게맞닥뜨리는 혼란과 고통이었다. - P20

모든 전사들 가운데 가장 강한 전사는 바로 이 둘, 시간과 인내다.

-레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스페인인 5명은 갈리시아 라코루냐 출신이었는데, 스페인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갈리시아는 마약 밀수와 담배 암거래, 특히 불법 어업을 자행하기로 유명한 범죄 조직들의 온상이라 종종 ‘스페인의시칠리아‘라고 불린다(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본거지다 옮긴이). - P29

시셰퍼드 요원들은 갑판에서 일할 때 동상에 걸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대개 구명슈트를 입었다. 무게가 5킬로그램 가까이 나가는 이 슈트는 완전방수 소재이자 극한의 추위를 막아주도록 고안된 고무의 일종인 네오프렌으로 만들어진다. 입으면 몸이 부해져 어기적거리게 되는 데다 색깔은 배 밖으로 떨어졌을 때 지나가는 선원의 주의를 끌 수 있는 강렬한 주황색인 경우가 많아 이슈트에는 유명 클레이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이름을 딴 ‘검비‘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슈트를 입고 있으면 슈트 밑의 피부가 심하게 쏠렸고 말라붙은 땀의 악취가 났다.  - P34

시셰퍼드 요원들은 거의 전원이 베지테리언이나 비건이었고 동물권 문제는 이들다수를 움직이는 동기였다. 죽었거나 죽어가는 가오리와 대문어,
용물고기, 대게 등의 야생동물들을 그물에서 풀어내는 일은 감정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작업이었다. 몇몇은 눈물을 흘렸고몇몇은 구토를 했지만 보통 하루 열두 시간씩 이어지는 작업을멈추지는 않았다. 양망작업이 2주차에 접어들었을 땐 선원들가운데 3분의 1이 등허리의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고 있었다. - P36

‘포세이돈의 군대‘라는 별칭이 붙은 시셰퍼드에는 대형 선박 5척과 공기주입식 쾌속정 5~6척, 드론 2대로 구성된 선단과24개국에서 온 준비된 선원 120명이 있다. 활동 자금의 상당 부분은 믹 재거와 피어스 브로스넌, 숀 펜, 우마서먼, 에드워드 노턴, 마틴 신 같은 유명인사들의 기부로 마련된다. 밥바커호 역시2010년에 배를 구입하는 데 500만 달러를 보탠 퀴즈 쇼 <그 가격이 맞아요>의 전 진행자 이름을 딴 것이다. 2012년 샘사이먼호 구입에도 2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갔는데, <심슨 가족>의 공동제작자가 비용의 큰 몫을 댔다.  - P42

위험의 특징은 그것을 경험하고도 탈 없이 빠져나오는 일이 쌀일수록 거기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위험을 마약처럼 받아들이거나 스릴만 노리고 위험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공포에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버렸다. 그 가나인들 틈에 있던 순간, 평범한 사람이라면 내면의 위험 측정기에서 노란 경고등이번쩍였을 순간에 나는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위험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 P49

추적이 시작된 지 2개월이 지났을 때이자 내가 시셰퍼드의 배에 오르기 2개월 전이었던 2월, 밥바커호 선장 해머스테트와 천둥호에 있는 그의 적수는 이 추격전에서 어느 한쪽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함께 깨달았다. 그 무렵 두 남자는 세계에서 가장위험한 수역을 지나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오는 오랜 격언 중에는 남위 40도 밑으로는 법이 없고 남위 50도 밑으로는 신이 없다는 말이 있다. 아르헨티나 최남단 바로 아래에 있는 이 구역의 날씨와 바람은 너무나 광포하고 위험해 몇백 년 묵은 공포의 거름이 되었으며 수많은 배를 침몰시켰다.  - P54

점검해야 한다는 구실로 천둥호를 강제 귀항시킬 일도 없어졌고 오스트레일리아 군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거절한 나이지리아는 법망을 피해 다니는 이 배에 대해 그나마 쥐고 있던 통제권마저 놓아버렸다. 모두가 공유하는 것은 보존되기보다는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는 개념,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현상을 그 무엇보다 또렷이 보여준 사례였다.  - P73

팔라우 부둣가 지휘 본부의 분주했던 하루는 전세계 바다를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국가와 기업, 비정부기구 간의 특수한 공조를 들여다볼 창구가 되어주었다. 팔라우는 해적질과 밀렵, 공해 유발, 밀수를 비롯한 각종 범법 행위를 일삼으면서도 처벌을받지 않고 바다를 어슬렁대는 불법 선박을 포착하고 나포할 국가적 역량을 강화해줄 여러 기술(드론, 위성 감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된 군용 레이더와 카메라 등)의 시험대로도 부상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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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0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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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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