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적지 않은 일본인이 그들 나름대로 죄의식을 품고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심화되지도, 충분히 분석되지도 않고 반세기가 지났다. 전후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피해자 의식 위에 서 있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반핵 평화운동에서도, 전쟁 체험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에서도, 전쟁은 적도 아군도 희생자로 만든다는식의, 죄의식과 상관없는 논조가 지배적이다.
그래도 난징의 학살‘을 이야기하고, 만주와 남방에서의 학살을 고발하고, 헌병이나 특무부대원으로서 범한 죄를 고백하고,
패주하면서 가족과 동포를 내버린 죄를 기록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죄를 묻지 않는 전후 분위기에 떠밀려어디론가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한편 학도병으로 동원되었다가 - P23

언제부턴가 나는, 침략전쟁을 재검토하지 않고, 그 시기에 어떤 전쟁범죄를 거듭해서 저질렀는가를 검증하지 않고, 그 시대를 부인과 망각으로 넘겨버리는 자세가 얼마나 우리의 문화를빈곤하게 만들어왔는지 고찰하고 싶어졌다. 죄를 자각하고 살아온 소수의 정신을 통해 다수의 그림자를 부각하고 싶었다. - P24

전후 일본의 의학계는 전쟁과 관련해 그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세균전을 전개하고 인체 실험을 한 731부대 관계자들은 패전 뒤 교토대, 교토부립의대 등의 의학부 교수가 되고, 공립병원의 원장이 되고, 정부에서 일하고, 혈액 관련 제약회사 미도리십자를 세웠다.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전통은 에이즈바이러스가 감염된 혈액으로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킨 미도리십자의 기업문화, 그리고 일본 후생성과 의학자의 유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 P30

수술대 위 두 명의 중국인은 숨이 거의 끊어질 듯했지만, 아직 숨을 쉬고 있었어요. 이대로 해부실 건물 뒤편에 파놓은 구덩이에 던져 넣기에는 마음이 쓰였습니다. 니시무라 병원장이 2cc주사기로 심장에 5, 6회 공기를 주입했지만, 호흡 상태에 전혀변화가 없었죠. 나는 목을 졸라 경동맥을 압박했는데, 그래도 호흡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중국인의 허리띠를 목에 감고O 중위와 둘이서 양쪽에서 잡아당겨 목을 졸라보았는데, 그래도호흡이 끊기지 않았습니다. - P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