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충분히 기뻐할 수 있다. 즐거움이 마음속으로부터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웃는 법만 익힌 사람들의 감정은 풍부해지지 않는다. - P16
우리는 무엇을 슬퍼하지 않았는가
나는 1970년대 중반 슬픔의 상실Die Unfähigkeit zu trauern』(1967년)을 읽은 적이 있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부부인 알렉산더미처리히 (Alexander Mitscherlich), 마르가레테 미처리히(Margarete Mitscherlich)가 함께 지은 이 책의 부제는 ‘집단행동의 기초‘인데, 지은이들은 "자신들의 공격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6백만 명이나 되는 인간을 죽였음을 깨달은 공동체, 모든 지지 기반을 잃어버린 공동체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자신들의 동기를 더욱 광범위하게 부인하거나, 아니면 우울증으로 퇴각해 버리는 것, 그 이외의 길은 없는 것 같다"고 논평했다. - P17
자신의 감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감정을 소통하는 것보다는, 사물의 성취나 귀결을 아는 것이더 우선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삶을 충실하게 하는 것은 지식이나 의지보다 감정의 흐름에 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집단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를 둘러싼 문화가 우리가 어떻게 사물을 받아들이고 느낄지 암묵적으로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8
우리는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실을 알기도 전에 "우리도 전쟁의 피해자다" "침략전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자학사관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논리를 강변한다. 우리는 이렇게 과거를 부인함으로써 무엇을 잃어왔던가. 체험의 부인은 콤플렉스를 만들고, 억압된 마음의 상흔은 감정의 경직과 병적인 충동의 폭발을 가져온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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