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결한 대머리, 그을린 피부, 깨끗이 면도한 얼굴―그 커다란 갈색 돔, 거기에 뿔테 안경 (어린아이 같은 눈썹의 숱 없음을 가려주는), 원숭이 같은 윗입술, 굵은 목선, 좀 꽉 끼는 트위드 상의 속의 장사 상체 그 시작은 제법 창대했지만, 그 끝은 홀쭉한 다리 (지금은 플란넬 바지를 입고 서로교차), 그리고 여자 발처럼 약해 보이는 발이었으니 다소미약했다. - P7

이제 비밀을 밝혀야 할 때가 왔다. 프닌 교수가 기차를잘못 탔다는 사실. 그는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고, 이미 객실을 향해 한 칸 한 칸 다가오고 있는 차장 역닌의시 모르고 있었다.  - P9

학생들이 그를 좋아했던것은 실력 있는 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안경을 벗어 들고현재의 렌즈를 문지르는 동안 과거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내면서 잊을 수 없는 여담들을 들려주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 P12

그의 큰어깨가 부들부들 들썩이는 동안, 그의 손이 그의 입을 향해날아가곤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의 춤추는 손에그렇게 가로막히면서 학생들의 몰이해는 두 배로 늘어났지만, 웃음참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그의 모습은 불가항력적인 전염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가 웃음을 터뜨릴 때쯤에는학생들도 배를 잡고 웃어대곤 했다.  - P14

오히려 그는 지나치게 경계하는 편, 악마적인 함정들에 대한 경계가 지나치게 집요한 편, 일탈적인 주변 환경들(예측 불허의 미국)의 꾐에 빠져 엉뚱한 불찰을 저지르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에 지나치게 시달리는 편이었다. 딴생각에 빠져 있는 것은 세상이었고, 프닌에게는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의 삶은 무신경한 오브제들―그의 생활 반경 안에진입하자마자 망가지거나 그를 공격하거나 작동하기를 거부하거나 악질적으로 미아가 되는―과의 끝없는 전쟁이었다.  - P15

생명의 주요 특징중 하나가 절연성이라는 것을 누가 전에 이미 지적했는지는 모르겠다. 피부라는 막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죽는다. 인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두개골은 우주여행자의 헬멧이다. 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소멸된다. 죽음은 안을 벗는 것. 죽음은 밖에 닿는 것. 풍경과 섞인다는 것이 원더풀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연약한 자아의 끝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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