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있던 이야기는 언제나 나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결코 로더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고, 그의 전체를 바라본 적도 없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그를이용해왔다.
로더는 내 우울이었다. 내 내면의 분열, 나를 아래쪽으로끌어당기는 힘, 내가 가장 조금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 로더의 분노를 확실히 규정하면서 몇 년을 보내는 일은 나를 기쁘게 했다. 나는 마치 로더 안에서 분노를 찾아냄으로써 내 안의분노를 줄이려는 것 같았다. 로더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정말로 그의 불능 상태를 숭배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신의 일부에 계속 몰두할 수 있었다. - P166

내게 곧바로 반응해주는 누군가의 지성이 있는 곳에서 내 지성이 작동하는 소리만큼 나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 나 자신에게 연결된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된다. 고독이 사라진다. 피부 아래, 나의 내면은 평화롭다. - P169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정에도 짜릿함만큼이나 평안함이 필요하다. 그 두 가지가 모두 갖춰지지 않으면 마음의 접붙이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연결은 신뢰할 수없는 순간의 문제로 남는다. 꾸준히 연결되지 않으면 우정에는미래가 없다. - P170

좋은 대화는 지성과 정신의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어울림에달려 있는데, 그 어울림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그저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통의 관심사나 계급적이해관계, 혹은 공동으로 세운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문제다. 기질이란 항의하는 투로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대신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듯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겠어" 하고 대답하게 하는 무언가다. 기질이 같은 사람과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솔직한 대화의 흐름이 거의 끊기지 않는다. 반면 기질이 다르면 언제나 누군가는 눈치를 보게 된다. 기질을 공유한다는 것은 한 벌의 톱니바퀴가 작동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발상은 복잡하지 않아도 톱니바퀴의 맞물림은 완벽해야 한다. 거의 정확한 정도로는 안 되고, 완벽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톱니바퀴는 돌아가지 않는다. - P172

고든의 집 거실 벽난로 위 선반에는 가죽 장정인 발자크의책들이 일렬로 꽂혀 있었다. 한번은 그중에서 《사촌 베트CousinBette》를 꺼내 책장을 넘겨보다가 근사하게 낡은 페이지들과 책장의 여백에 적힌 흡입력 있는 통찰에 나도 모르게 감동받은 일이 있었다. 그 책자체가 사랑의 행위였다.  - P183

그 상황은 정말로 ‘체호프적‘이었다. <제6병동>에 나오는,
그 자신이 수감된 다음에야 마침내 감금이라는 상태를 이해하게 되는 의사처럼 바로 다음번이 내 차례였다. - P185

전화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본질적으로 반응일 뿐, 반영이아니다. 그 주된 장점은 직접성이다. 그 직접성은 누군가와 빠르게 함께 있을 수 있게 해주며, 즉각적인 자극을 전달한다. 자극은 카타르시스를 주고, 카타르시스는 불안을 뒤로 밀어내며,
그 빈 공간으로 전기의 순환에서 생겨나는 종류의 생각이 흘러 들어간다. 반면 고독에 몰두한 채 쓰는 편지는 신뢰의 행위다.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있다고, 세계와 자아는 안쪽에서부터만들어진다고, 외로움은 얻으려고 애쓸 만한 것이지 두려움의대상이 아니라고 가정하는 행위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내가 상상해낸 다른 사람의 존재 앞에서 나의 생각들에 혼자 몰두하는일이다. 나는 상상 속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 상대가 된다. 나는텅빈 방을 가득 채운다. 혼자서 그 침묵 속으로 스며든다. 이모든 것은 70년 전 우리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한밤중에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레빈슨 씨 역시 했던 일이다. - P235

정보의 전달이란 표면을 건드려보기 위해 일련의 연결 신호들을 발신하는 일이다. 반면 이야기하기란 황무지 한가운데한 줄기의 길을 내는 일이다. 삶에는 둘 다 필요하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경험이 부족해진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데는 반드시 커다란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갖는 것은 비경제적이며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 P236

온 세상 사람들이편지를 쓰는 시대에는 내면의 고요함에 다가가고, 한 시간 동안의 일을 말하고, 이야기하는 내면의 삶을 계속 살아 있도록유지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럴 때 자신의 생각에 혼자 몰두하는 일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실천이 된다. 인간으로 남아 있으려는 그 분투는 카페들이 텅 비는 때, 우편물배달만 믿을 수는 없게 되는 때 심사숙고하는 행위로 변한다. - P236

윌슨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진실로 만들어낼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성과 상상력과 손으로, 니체가 말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를 거쳐 해낸 작업들이 결국에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냅니다." 

그와는 반대로, 작업을 하지 않는 일, 심사숙고를회피하는 일 역시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편지를 쓰고자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유산될 때마다 나는 내가 비난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을 표류시킨다. 소음이세상에 만연하게 내버려둔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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