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말해 주고 있듯이, 그리고 이 책의 전체를 통하여말하고 있듯이 절망은 병으로 이해되는 것이지 약으로 이해되는 것이아니라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것이 절망의 변증법적인 특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적인 용어에 있어서 죽음은 가장 큰 영적인 비참을 나타내는 용어이지만, 그러나 이에 대한 치유 또한 죽는 것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죽는 것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 P16

절망에 의한 죽음은 지속적으로 자기를 삶의 한가운데로 옮겨 놓는다. 절망한사람은 죽을 수가 없다. ‘칼이 사상을 죽일 수 없듯이 절망도 자신의지반에 놓여 있는 영원한 것을, 즉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모해 버릴 수는 없다. 절망의 벌레는 죽지 않고, 절망의 불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  - P38

 그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멸시켜 버릴 수도 없고, 자기자신을 다시 만들 수도 없으며, 무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러한 무력감이 절망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는 절망했던 것이 아니라,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자기의 열병 안에서 상승된 절망의 힘이며, 상승의 공식이다. - P39

자기가 절망하고 있다고 말하는사람은 보통 자기가 정신이라는 것을 자각할 만큼 천성적으로 이러한특성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괴로운 사건이나 무서운 결단에 쫓겨서 자신이 정신이라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 사람이거나 둘중 하나에 속한 사람이다. 어느 쪽이든 이러한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것처럼 구원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이다. 어쨌든 참으로절망하고 있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P56

그는인생의 기쁨이나 슬픔에 마음을 빼앗겨 영원한 결단으로 자기 자신을정신, 즉 자아로서 의식하지 못하고 나날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결국동일한 것이긴 하지만 이러한 사람은 신이 존재하고, 그 자신이 신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다. 너무나 당연한말이지만, 이러한 ‘무한성을 수확하는 일‘에는 절망을 통하지 않고는결코 도달할 수가 없다.  - P57

당신의 영광이 모든 인간적인 묘사를 능가할 만큼 큰 것이었든지 혹은 더없이 가혹하고 치욕스러운판결에 의해 당신이 죄인으로 낙인을 받았든지 이러한 것들은 전혀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과 상관없이 영원이 당신에게 묻는 것, 수천, 수백만의사람들 각각에게 묻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당신은 절망하며 살아왔는가? 당신의 절망을 조금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절망하며 살아왔는가? 아니면 당신은 이 병(절망)을 마치 죄 많은 애욕의 결실처럼 비밀스럽게, 남몰래 가슴 깊이 숨기고 스스로를 책망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는가? 혹은 이 절망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광포해지고 남들에게 두려움을 주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 P59

만일 내가 모험에서 실패를 한다면, 나의 인생이 나를 벌하여 나를구원해 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전혀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대체 누가 나를 구원해 줄 것인가? 특히 비겁하게도 최고의 의미에 있어서 모험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ㅡ최고의 의미에서의 모험이란 바로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ㅡ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한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서 무슨 소용이있겠는가?
- P73

인격은 가능성과 필연성의 종합이다. - P83

자기자신과 신을 알기위해서는 상상력을 통하여 안개 같은 개연적인 것의 영역보다 더 높이 날아올라, 개연적인 영역의 분위기로부터 탈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경험의 총량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가능함을 믿음으로써 희망하고, 희망하면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서 희망하는 법을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물근성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싫어한다.  - P85

89 역주: 여기서 ‘내밀성‘이라고 번역한 덴마크어는 ‘Indelsluttedhed‘이다. 라우리(Walter Lowrie)의 영어 번역에는 ‘introversion‘으로 되어 있는데, 한글로는 ‘내향‘ ‘내성‘ ‘내향성‘ 등으로 번역된다. 반면 불어에서는 ‘intimité‘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내성‘ 혹은 ‘내밀성‘으로 번역된다. 이용어는 말 그대로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타인에게는 숨겨져 있는 은밀하고 밀폐된 것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의미로는 자기 속에 틀어박혀 있는 폐쇄된 상태를 의미하겠지만,긍정적으로는 남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무엇을 의미하는 내적 자아를 지칭한다. 키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그리스 신화 속의 비극적인 인물인 ‘안티고네‘의 예를 들어서 이러한‘내적인 자아‘를 가지는 것을 (철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보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 P125

일반적으로 고독에 대한 갈망은 정신의 징표이며, 정신을 재는 척도이기도 하다.  - P127

94 역주: ‘자기이고자 하는 절망‘의 대표적인 정신이 ‘스토아주의‘인 이유는 스토아학파가 지향한 목적이 영혼의 절대적인 평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마지막 시기에 등장한 스토아철학자들은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었고, 이러한 행복이 영혼의 절대적인 평정에서 주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영혼의 평정을 얻기 위해서 스토아철학자들은 모든 인간적인 관계성을 뒤로하고 마치 수도승들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갔으며, 그 어떤 외적인 변화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화, 영
혼의 절대적인 평정(아타락시아)을 추구하였다. 키르케고르가 이들을 ‘자기이고자 하는 절망자‘의상징적인 인물로 내세우는 것은 모든 인간적인 관계성이나 조건들을 초월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 때문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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