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뿌리가 자라는 시기라고 생각해, 어떤 땅에서 자라났는지, 그때의 기후가 어떠했는지에 따라서 뿌리의 생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씨앗으로서는 아무리 자기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토양이 척박해서 양분이 부족하면 그 뿌리가 어떻게 굵고 단단하게 땅 아래로 뻗어나갈 수 있겠어. 뿌리가 작고 연하고 약하면 그에 맞게 줄기도 작고 연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게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아무리 애를써도 이미 그 시기가 지나면 뿌리는 더 자라지 않는 것 같아.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어려워. 늘 뿌리 뽑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P75

솔직함도 마음이 강한 사람이 지닐 수 있는 태도인 것 같아. 내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너의 눈을 보고 말했을 거야. 지호야, 너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한 친구야. 너는 나를 판단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온전해지는 기분이 들었어.  - P82

큰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덜 상처받고, 덜위험한 길만을 골라서 갔지. 그리고 그건 언제나 내 마음속 욕구와는 다른 길이었던 것 같아. 계속 그런 식으로만 살다 보니나중에는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게 되더라.
- P83

자기 마음을 배울 수 없고, 그렇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는 채로 살아간다.
- P95

그해 봄여름, 유진은 자주 걸었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하루에 여섯 시간, 일곱 시간을 걷기도 했다. 대학 입학 선물로받은 르까프 운동화를 신고 야구 모자를 쓰고 이리저리로 걸어 다녔다. 술에 취하면 술을 깬다는 이유로, 밥을 먹으면 먹은걸 소화시킨다는 이유로, 피곤하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유진은걷기 시작했다.
- P97

 마음이란 건 하도 걸어 물집투성이가 된 발바닥 같았다. 예쁜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이 아니라.
- P104

자신의 채반 같은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인정하게 된 것도, 아무리 바가지로 물을 떠서 담으려고 해도 채반 같은 마음에는 조금의 물도 머무를 수 없었다. 신을 받아들였다는 건…. 무려 신의 사랑을 체험했다는건 채반에 더는 물을 붓지 않고 깊은 물속에 채반을 던지는 일 같았다. - P108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걸까.
- P109

최근에만 2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생매장되었다는뉴스를 들으면서 그녀는 천만 마리가 넘어가는 닭의 무리를상상하려 시도했지만 상상할 수 없었다. 말의 목을 껴안고 용서를 빌었던 니체와 대규모로 동물을 사육하고 살처분하는 인간들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데카르트의자녀들일까.
- P189

미리는 현주를 만나고 나서야 사랑은 엄연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랑은 애써 증거를 찾아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동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연 깊은 곳으로 내려가네발로 기면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는 일도, 자신의 가치를증명해야만 어렵게 받을 수 있는 보상도 아니었다. 사랑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것이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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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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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1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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