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 P31

나는 그 애에게 내가 왜 장만옥을 좋아하는지 흥분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랑한다고 해야겠지. 처음그녀를 스크린에서 봤을 때 나는 사랑에 빠졌어. 저음의 목소리 하며 웃을 때 살짝 한쪽으로 올라가는 입꼬리에 아름다운눈썹, 그리고 그 깨끗한 눈을 봐봐. 말을 하지 않고도 백 마디말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해, 장만옥이 사람일까?
- P38

테르미니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우리가둘 다 영화를 많이 좋아하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충동적으로 이탈리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그 애로부터 이름이왜 데비인지, 영국 국적으로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홍콩과 중국이 어떤 의미인지도 듣게 됐다.
- P39

 6인용 도미토리 방에는 작은 발코니가 밖으로 달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 서서 맞은편 건물을 바라봤다. 발코니마다.
빨랫줄에 빨래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발코니에 기대어 바깥구경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피렌체의 아르노강이 보이는 숙소에서 이미 자고 있어야 했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폴리의 한 발코니에 선 나는 어쩐지 그 순간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 P41

생수를 사는것이 아까워서 분수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정도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데비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아기자기한 기념품들과 엽서를 꼬박꼬박 샀고 우표를 사서 도시를 떠날 때마다 홍콩에 편지를 부쳤다.
- P43

너도 자라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니. 그렇게 따로 묻지 않았던 건, 외롭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란꿈처럼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당연히 주어지는것이기 때문이었다.
- P44

거기까지 쓰고 나는 생각했다.
데비, 나는 다시 잘못된 기차에 탔어.
- P50

데비는 자기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뤄낼 수 있다는 낙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 데비와 나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사람은 자기보다 조금 더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가진 사람을 질투하지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데비를 질투할 수조차 없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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