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참조하며 이웃 사람을 모방하고 집단 전체가 한없이 균질화되어가는 것에 깊은 희열을 느끼는 인간들에게 니체는 노예Sklave‘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니체의 후기 저작에는 이 노예적존재자에 대한 매도와 조소의 말이 넘쳐납니다.
- P56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매어진 하나의 밧줄 ㅡ심연 위에 매어진하나의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기도 힘들고 가는 도중에도 위험하고 뒤돌아보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한 점은 인간은 다리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이 사랑받을 수 있는 점은 그가 하나의 과도이며 몰락이라는 점이다.

ㅡ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P58

니체는 무엇인가를 격렬하게 혐오한 나머지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열망하는 것을 ‘거리의 파토스Pathos der Distanz 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혐오감이 바로 ‘자기초극의 열정‘ 을 제공해줍니다. 따라서 ‘초인‘ 으로 항하려는 의지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추악한 짐승의 무리‘ 가 거기에 모여서 혐오감을 불러일으켜주어야만 합니다. 자기의 고상함 을 자각할 수 있기 위해서는 늘참조 대상이 되는 저급함‘ 이 존재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 P59

니체의 초인 사상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초라하고 폭력적인 반反유대주의의 프로파간다였습니다. 히틀러의 망상을 자극했던 것이지요. 니체는 자기가 죽은 뒤에 초인 사상이 전 세계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P60

마음속에 있는 어떤 생각‘ 이라는 것은 사실 언어에 의해 표현 됨과 동시에 생긴 것입니다. 그보다 말을 하고 난 뒤 우리는 자기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 P78

우리는 모두 자기가 사용하고 있는 어법의 진리 속에, 즉 그 지역성속에 붙들려 있다. 나의 어법과 이웃 사람의 어법 사이에는 격렬한 경쟁관계가 있고 우리는 그곳으로 끌려 들어간다. 왜냐하면 모든 어법(모든 픽션)은 패권을 다투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어떤 어법이 패권을 손에 넣으면 그것은 사회생활의 진역으로 퍼지고 징후가 없는 ‘편견doxa‘ 이 된다. 정치가나 관료가 말하는 비정치적인 언어, 신문이나 텔레비전, 라디오가 떠드는 언어, 일상의 수다. 그것이패권을 장악한 어법이다. 바르트.텍스트의 즐거움』에서 - P133

에크리튀르만큼 사람을 잘 배신하는 것이 없습니다. 바르트가 이상으로 삼았던 저널리스트의 에크리튀르‘ ‘르포르타주..
의 어법‘, ‘다큐멘터리의 시선‘ 이 말하는 사람의 주관이나 욕망에의해 얼마나 많이 오염되어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텔레비전 뉴스의 영상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비취준다‘ 고 믿을 만큼 순진한 시청자는 없습니다. 동일한 영상자료를 사용해도 편집을 바꾸고 내레이션을 바꾸고 음악을 바꾸면 전혀 다른 메시지를보낼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트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에크리튀르를 이상적인문체‘ 라고 극찬했습니다. 이 소설은 저자가 주인공의 행동이나 발언을 모두 다 안다는 식으로 설명 하거나, 혹은 주인공의 내면에 파고드는 것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사실만을 담담하고 적확하게 기술하는 건조하고 울림 좋은 문체가만들어졌습니다. 『이방인」의 에크리튀르는 순수한 에크리튀르 의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사람들이 알베르 카뮈의 에크리튀르를 아름다운 문장의 모범‘ 으로 받들기 시작하면 그또한 제도적인 어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P147

온갖 에크리튀르는 그것을 선택한 순간만 ‘자유의 환영‘ 을 보였다가 다음 순간에 이미 경직되고 그 사용자에게 노예의 복종을강요하는 장치로 변하고 맙니다. 저널리즘도, 『이방인』도, 초현실주의도, 누보로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후 모든 에크리튀르의 모험에 환멸을 느낀 바르트가 어쩌다가 만난 것이 일본의 하이쿠句였습니다. 바르트는 바쇼가 쓴 한 구절에 대해 논하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 P148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소쉬르의 직계인 프라하학파의로만 야콥슨과의 만남을 통해서 학술적인 방법을 단련한 문화인류학자입니다. 그는 야콥슨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친족구조를 음운론의 이론 모델로 해석하는 대담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친족의 기본구조나 슬픈 열대를 저술하는 등인류학의 현지조사를 통해 학문적 업적을 쌓아 올린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5년 동안 프랑스 사상계에 군림해온 실존주의에 실질적인 사망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 P153

"자네가 자네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싶다면 자네는 변화해야만 해. 그러나 자네는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어."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하고 과거 절친한 동지였던 카뮈에게 사상가로서의사망선고를 내렸습니다.
- P158

어떤 영역에 대해 개념이나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 집단이그 영역에 대해 깊고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문명인‘과 ‘미개인‘ 은 그 관심을 갖는 방법이 다를 뿐, ‘문명인‘ 처럼 세계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미개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세계는 사고의 대상, 즉 최소한 다양한 욕구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P161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르트르의 개념은 전통적인 폐쇄사회의 특징인왜소성을 드러낸다. 사르트르가 안이한 대비를 통해서 미개인과 문명인의 구별을 강조하는 것은 그가 자기와 타자 사이에 설정하는 기본적인 대립을 꽤 난해하지만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야생의 사고>에서 - P163

사회구조는 우리의 인간적,
감정이나 인간적 이론에 앞서서 이미 그곳에 있고, 오히려 그것이,
우리가 지닌 감정의 형태나 논리의 문법을 차후에 구성하는 것입니다.ㅡ구조주의 관점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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