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나는……….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는 야성적이었지만 나는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나를 강력한 용액에 담가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습관과미국에 양보한 모든 것을 내 피부에서 벗겨낸다면 내가 아니라 그가 발견될 것이다. 내가 처음 카페 알제에서 용기를 내그의 테이블로 걸어가 침묵을 깼을 때 그가 내게 불쑥 다가온것처럼, 별안간 푸른 지중해가 펼쳐질 것이다.
- P74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시대에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내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나와 닮은 점을 보지 않았다면, 내 안에서 재갈이 물린 채로 잊히던 무언가를 그의 말 속에서 발견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 편향적이고 무분별하게 느껴지는 그의 투덜거림이 내게 말을 걸었고, 나를 과거로 데리고갔다. 마치 카페 알제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채 무시당하고 있던 무언가에게로 나를 데려다준 것처럼.
- P75

아마도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 나의 그림자,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다락방에 숨어 사는 미친 형제, 나의 하이드 씨,
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草稿, 가면을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 완성되지 않은 나, 속박받지 않는 나, 누더기를걸친 나, 격분한 나.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세련된 매너가 없는,영주권이 없는 나. 칼라슈니코프를 들고 있는 나.
- P76

그가 날마다 늘어놓는 미국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통렬히 비판하는 대상이 실은 미국이 아니었고, 그의 목소리가 막강한 서구 세계를 막아내려고 애쓰는 중동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들은 것은 나이 든 인간의 거칠고 쌕쌕거리며 겁먹은 목소리, 인류애처럼 보이고 그것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닌, 새로운 흐름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문명이나 가치관, 문화의 충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장기를, 어느 쪽 심실을, 소중한 오감 중 어느 감각을 잘라버려야 하는가 하는문제였다.
- P77

*그게 바로 그가 브뤼뇽 , 즉 천도복숭아를 싫어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천도복숭아처럼 달콤해지고있었다. 친절함과 진심은 없이 달달한 말만 하고, 조작되고,
꿰매지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진짜로 태어나지 못한 천도복숭아. 머리는 자두 모양, 엉덩이는 복숭아 모양, 고환은 초콜릿 과자 모양. 과일 왕국에 사는 실제 친적은 단 하나도 없는 천도복숭아. 그들의 모든 것이 접붙여진거였다.
- P77

 그는 굉장히 고마워했고, 살면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해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말 말라고, 별일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내 말이 틀렸다면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모르는 것이 좋은 친구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 P83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그렇게 잘 읽은 이유는 우리가 모든 것과 모든 이를 경멸한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멸하는 마음은 서로 다르게 표현됐지만 자기혐오라는 똑같은 원천에서 흘러나온 게 틀림없었다. 내 자기혐오의 원천에서는 증오와 반감이, 그의 원천에선 분노가 터져 나왔다. 처음부터 자기 혐오자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수가 쌓이고 길을 잘못 드는 횟수가 많아지면 자신을 용서하려는 노력을 멈춘다. 어디를 보아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수치심과 패배감을 발견할 뿐이다.
- P85

활화산처럼 분노를 표출하고 인류 전체에 대해 과장된비난이나 쏟아냈을 뿐 그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거나 성장한 척했다. 우리가 그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폭력은 그에게서 열일곱 살 소년을발견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이 멈춰버린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그 이후로는 실수와 헛소리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을 뿐이었다.
- P87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96

나는 그때까지 라 드라그 여자 꼬시기를 삶의 한 방식으로 삼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칼라지는 다른 누구보다도 여자를원했고, 그렇다고 그가 다른 남자보다 잘생긴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여자가 없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입으로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않았다. 그러나 여자들은 이해했다. 그는 항상 여자를 원했다. 여자를 보자마자 눈에 광채가 났다. 흥분하고, 눈을 빛내고, 감사할 줄 알며, 다정해졌다. 그는 여자를 만지고 더듬고키스하고 깨물고 싶어했다. 여자들은 그런 그의 마음을 즉시알아차렸다. 여자들의 피부와 무릎과 발을 보는 그의 눈빛이저걸 만지지 않으면 난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는 여자들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술을 가늘게 떨면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는 늘 열정부터 느꼈고, 사랑은 훨씬 나중 일이었지만, 관심은 항상 가졌다.  - P119

문득 내가 칼라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라지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베르베르인이었고,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아랍인이었으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이집트인이었으며, 지금은 와스프사이에서 철저한 외계인, 라크로스팀이나 폴로팀*에 지원하는 멍청한 잡역부였다.
나는 대서양 이편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러고 보니 대서양 저편에 있는 것도 증오했다.
나는 미국과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증오했고, 지금 이 순간은 프랑스를 증오했다.  - P133

나는이미 고립되어 있었다. 고통이 내가 풍랑에 휩쓸리고 바닥에구멍이 뚫린 배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 P230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유령을 갖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칼라지의 유령을 보고 있었다. 그건 그가 고함을 질러 그 유령을 쫓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P270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 떨어지고 짐 싸서 뉴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에 이 파티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 P272

나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외로운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했다.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 심지어 우는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한 수치심도 삶의 매 순간 그에게 휘몰아치는 지독한 고독과 절망의 폭풍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했다.
- P274

우리 각자가 마치 달처럼 수많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측면을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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