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은 말수가 너무 많은 인간이 바보 천치가 아닌 경우를 이때껏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 P107
조지는 밀가루가 묻은 로즈의 손이 보기 좋았다. "예, 날씨도미리 알아 둬야 합니다. 그렇고말고요." 스스로도 인정하다시피조지는 눈물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이나 사랑에 대해서도 잘 알지못했지만, 그래도 그곳에 앉아 있으니 즐거웠다. 그리고 자기 딴에는 훨씬 더 흥미진진한 주제로 넘어가기 직전인 지금 이 대화도즐거웠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사랑에 관하여 알아야 할 것을 다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자신도 함께 있는 기쁨을. - P118
"버뱅크 씨." 나중에 주방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로즈가 말했다. "제가 근심에 빠졌을 때 버뱅크 씨는 두 번이나 이곳에 계셨어요. 그런데 저는요, 자주 근심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 P122
로즈가 피아노를 칠 때면 필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떠났다. 그는 로즈가 음을 틀린 순간을 더없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일어섰기 때문에, 로즈는 그가 집을 나섰거나 아니면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다시 피아노를 칠 엄두가나지 않았다. 로즈는 필의 취향이 조지보다 훨씬 더 고상한 것은아닌지, 그래서 필이 자신을 속으로 비웃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로즈가 주지사에게 잘 보이려고 연습하는 것을 알고서. - P168
필은 자신이 집 뒷문을열었을 때 로즈가 연주를 멈추는 것을 몇 번이나 눈치챘다. 문을여는 것만으로도 로즈의 연주를 더 훌륭하게 따라 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가 있었다. 그 여자의 성질을 긁는 일은 그렇게 식은 축먹기였다. 손을 떠는 꼴이 어찌나 고소하던지, 손을 떨다 못해 커피까지 엎지르지 않던가! 필은 스스로를 동정하는 인간들을 혐오했다. - P170
필은 자기 가족을 굼뜨고 거치적거리는 얼간이와 응원자와 몽상문으로 여겼고 필을 제외하면, 그들은 실제로 그런 존재였다. 어떻게 한 인간이, 어떻게 한낱 인간이, 자신이 꿰뚫어 본 남들의 내면을 남들 스스로도 보게 하는 힘을 지녔을까? 그런 권능을 필은 어디에서 얻었을까? - P183
필은, 아아, 남의 약점을 찌르는 법을 그는 너무나 잘 알지 않던가. 맙소사, 덜 아문 상처의 딱지를 들추는 법을. - P265
그러나 소년에게는 필이 높이 사는 점이 하나 있었다. 열린천막 앞을 지나가며 기묘한 방식으로 조롱을 당하는 동안에도 소년은 결코 걸음을 멈추지도, 쭈뼛거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소년은아예 어떤 소리도 못 들은 양 태연하게 걸어갔고, 자신을 구경하며 히죽거리는 남자들 앞을 다 지나간 후에는 고개를 들고 버드나무의 지저분한 둥우리를 올려다보았으며, 그 속에서 아직 몸도 못가누고 꼼지락거리는 새끼 까치들이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에귀를 기울였다.
필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손으로는 가죽 밧줄을 닿으면서, 소년은 엄마에게 돌아갈 때 앞서 왔던 길을 다시 갈 필요가 없었다.
천막 뒤를 돌아서, 남자들의 비웃음과 조롱하는 눈길을 피할 수도있었다. 소년은 돌아섰다. 그러고는 열린 천막들 앞을 다시 똑바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휘파람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 P301
피터는 헌든에 있는 깔끔한 자기 방이 그리웠고, 친구와 함께 두는 체스가 그리웠다. 홀쭉한 몸을 흐느적거리듯 움직이는 그친구는 고등학교 교사의 아들이었는데 피터와 마찬가지로 이때껏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고, 한번 웃음이 터지면 참을 줄을몰라서 몸이 축 늘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할 때까지 킥킥거렸다. 피터는 하느님이 내려 주신 이 친구와 함께 각자가 그리는 미래에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애가 탔다. 그 미래 속에서 한쪽은 이름난외과 의사였고 다른 쪽은 이름난 영문학 교수였다. 둘은 처음에는장난이었지만 나중에는 꽤 진지하게 서로를 ‘박사님‘과 ‘교수님‘ 으로 불렀다. 다만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 P305
피터의 눈은 끝까지 로즈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어머니가 이러지 않아도 되게끔 제가 처리할게요." 로즈는 묻고 싶었다. 처리하다니, 네가 무슨 수로? - P311
그러나 피터가 드넓게 구불구불 이어진 언덕을 넘고 또 넘은까닭은 단지 승마 연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남모르는 외진 곳을돌면서 소년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오랫동안 탐색하며, 기도에 가까운 행위에 몰두했다. 간절한 탄원의 형태를 띤 그 기도를, 소년은 자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드렸다. - P319
그러나 필은 알았다, 뼛속 깊이 잘알았다. 추방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그래서 그는 세상을 혐오했다. 세상이 먼저 그를 혐오했으므로. - P348
그의 지성과 서글서글함, 젠체하지 않는 소탈함, 공평무사함 같은 것들에 관하여. 물론 그들은 필의 밴조 연주 실력과 명랑한 휘파람, 소년 같은 장난기, 그가 붉게 트고 흉터투성이인 억센 손으로 만든 작품들 또한 기억했다. - P356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 건져 주시고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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