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꿰뚫어 볼 수 없는 차디찬 가면을 목 위에 얹고 다닙니다. 입가의 주름을 힘껏 내려뜨리고, 흥분된 감정을 이를 악물며 삼키고, 두 눈에 불안한 기색이 드러나지 않게끔 합니다. 불거져 나오는 얼굴 근육을 반반히 펴서는 점잖게 보이는 무관심한 얼굴로 만들어 놓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얼굴을 통제하느라 온통 신경을 쏟아붓는 바람에 손을 잊어버립니다. 오직 이 손만을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립니다.  - P284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저는 이처럼 말을 하는 손을 본 적이없습니다. 손의 근육 하나하나에 혀가 달려 있었고, 솜털 구멍들은송골송골 정열을 뿜어내다시피 했으니까요.
- P287

저는 괜찮다며 거절했고, 고마워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사실은 한마디 말이 오갈 때마다 울화통이 터졌고, 하필 이 시간에 저를 돌보려 드는 시누이를발로 차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불청객은 제가 걱정되는지 저를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았습니다.  - P333

어쩌면 열정이라고는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야 한순간 눈사태처럼 갑작스럽게, 허리케인처럼 맹렬하게 열정이 분출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경우 수년 동안 쓰지 않고 있던 힘들이 돌무더기처럼 굴러 내리며 그 사람의 가슴을 강타하게 됩니다. 저는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 순간에 겪은 충격과 미칠 듯한 무력감에 견줄 만한 감정을 겪은 적이 결코 없습니다. 그 순간 저는 최고로 대담한 일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아끼고 쌓아 두었던제 삶 모두를 단번에 내팽개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제 앞에 무의미하기 그지없는 장벽이 나타나는 바람에 저의 정열은 그 장벽에 이마를 부딪치고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 P335

이 작품이(예레미아) 시대의 흐름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나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나,
츠바이크라는 악기에 달린 모든 현이 처음으로 열렬히 소리를 내게 되면서 이전에 기회 닿는 대로 만든 작품에 깃든 유희적 요소는 이후 열정으로 변모했다.
- P351

대학 시절 내내 그는 학업에 몰두하기보다는 소설과 시, 평론들을 신자유신문을 비롯한 신문과 잡지에 꾸준히 발표하며 자신의 창작활동에 열을 올렸고 베를렌과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여출간했는데 이 번역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번역으로 꼽힌다.  - P360

츠바이크는 1920년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정신분석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며 프로이트 덕분에 너무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쓴다. 그는 "문화와 문명은 다만 표면의 엷은 층에 불과하기에 이것은 어느 때고그 밑에 있는 심층 세계의 파괴적인 힘에 의해 쓸려나갈 수 있다"
는 프로이트의 학설을 자신의 소설 속 인물들의 운명에서 여러 형태로 보여주고 있다. - P3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