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의 육체와 노예의 육체 가운데 후자에게 삶의 하찮은의무를 처리할 힘을 주고, 전자는 마차에 꼿꼿이 앉고 (비록 물리적 노동에는 쓸모없지만) 공민적 삶의 다양한 목적에 쓰이도록 물리적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연의 의도다.
ㅡ아리스토텔레스

이때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비합리적이다. 그렇지만 노예의 육체적 특성에 대한 이 묘사에서 사회구조 가운데 정신 육체 위계의 제도화 작업이 생산 및 재생산 노동에 참여하는 이들을 관념상 순수한 육체로 바꿔 버리는 지점을 엿볼 수 있다. 

남성, 주인, 폴리스의 관점에서 여성과 노예는 육체의 기능과 정체성을상징했으며, 그들은 육체일 뿐 그 이상의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다. 

바꿔 말하면 폴리스의 남성들은 육체적 일에서의 자유 또는육체적 일에 대한 거부를 덕으로 삼아 시민이 되었다. 

이 거부를 통해 육체에서 ‘정화된‘ 정신으로 통치하겠다고 상정한 정치적·사회적 질서를 확립하고 적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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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21세기의 정치가로 이런
발언을 했다면 그는 계속 정치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 P104

지배받는 자의 혜택을 위한 통치ㅡ아리스토텔레스 - P106

남성이 노예·여성 · 동물의 육체에 대한 통제권을 얻으면, 이들은 오직 남성의 욕구 파악과 충족을 통해서만 ‘인간‘의 구조에서 생존과 장소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정신까지 남성의 욕구에 바치게 된다. 

이런 이중 소외 과정, 즉 주인에게 육체적 본성과 욕구를 내줄 뿐만 아니라 자기 지향의 정신까지 내주는 소외 과정에서 사실상 새로운 생물, 길들거나 장애가 있는이들이 등장한다. 

이런 생물들이 자족성을 위한 수단을 빼앗겨서 자신의 생존 수단도 없이 유지되는 한 자유로운 남성들이 그들을 다스리고, 그들로부터 혜택을 취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듯 보일 수도 있다. 

미시적으로 볼 때 여기에는주인과 노예, 남편과 가족, 인간과 동물, 정치의 영역과 필요의영역 등의 자연스러운‘ 관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식화가 있다. 

지배와 착취의 정치라는 조건이 제도적 이데올로기적변환을 통해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 - P107

아렌트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공적 영역은 필요의 영역과 분리, 격리되어야만하는 것이다. 즉 ‘남성 가운데 최고의 것‘ 그리고 활동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인 남성됨과 정치가 실은 극도로 부서지기 쉽고, 쉽게위협받고, 자신들을 부양하며 생명을 주는 열등한 요소들에게오염될 것이라는 역설이 들어 있다. 

그 어떤 타자보다도 너무나우월하고, 가장 우월한 연합 속에 살면서 모든 질료의 올바른 순서와 정의를 정하는 남성들이 ‘그들의 지배로부터 혜택받는 이들에게 감염되는 것을 피해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격리되어야만 한다.
⚡⚡⚡⚡⚡ - P110

♣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렌트는 모두 폴리스를 부양하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영역에 대한 정치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권력관계를 통해 조직된 영역의 정치적 지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아렌트와 달리 ‘전정치적인 것‘의 힘과 폭력이 끝나는 바로 그지점에서 정치가 시작한다는 주장을 확고하게 구축하지는 않는다. 오이코스에 대한 그의 토론은 남편과 정치가, 노예주와 군주사이의 유비로 가득 차 있다.  - P110

그녀가 <인간의 조건>에서 활동적 삶 viva activa 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펼치면서도 고대 그리스에 대해서든, 현대 우리 시대에 대해서든 진정한 행동의 확고한 예를 들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P122

만일 그리스 폴리스가 서양사상 가장 완벽하게 형성된 ‘정치 공간 이었다면, 왜 아렌트는 자기 저작에서 그리스의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 가운데 단 한 가지 사례도 들지 않았을까? 

이들 질문에 대한 답은, 아렌트가 문제를 좀 더 극단적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적 행동을 상위 목적에 이르는 수단으로 다루게 된 이유와 비슷하다. 아렌트는 행동을 이론으로 정식화함으로써 행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육체와 물질적 삶을거부한 그리스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정치적행동을 우상숭배에 가깝게 옹호하면서도 그것의 가능성 자체를지워 버린 것이다. 

행동에는 사고와 말뿐만이 아니라 육체가 필요한데, 아렌트는 정치에 육체가 끼어드는 것을 거부했다. 이렇게 본다면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오독한 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자리에서 논리를 다소 터무니없게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도 폴리스의 시민들이 순서를 정해 돌아가며 서로를 지배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할지 정확히말하지 못하며, 이마저 도구적 활동, 즉 필요가 아무런 구실을 하지 않는 여가 있는 삶이라는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라고 본다. 

그는 또한 폴리스를 최고의 인간 연합으로 확립하려 하다가 폴리스의 활동을 궁극적으로 은폐해 버렸다. 그리고 정신이 육체를지배하고 필요에 따라 이를 분리하는 남성됨을 받아들임으로써
‘육체 없는 행동‘ 이라는 문제를 만나 좌초한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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