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애들에게 「벤을 조심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폴이 팔을 다친 사고 이후 그럴 필요조차 없어졌다. 그날저녁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지만 자기 부모나 도로시, 앨리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서 있었다. 이것은 벤에 대한아이들의 태도가 벌써 자리잡았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알게 해주었다. - P79
어느 날 아침 해리엇이 애들에게줄 아침을 준비하려고 내려와 보니 개가 부엌 바닥에 죽어 있었다. 심장마비인가? 그녀는 갑자기 의심이 들어 벤이 자기 방에있는지 보려고 달려갔다. 그 애는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가자 그 애는 그녀를 쳐다보고는 소리없이 이를 다드러내고 웃었다. - P84
어느 날 그녀는 그 애를 잡으려고, 빵빵대는 차들이나 경고하는 사람들의 비명을 무시하고 신호등을 건너는 뭉퉁하게 웅크린 작은 모습만 보면서 1마일 이상 뛰었다. 그녀는 울면서 숨을 헐떡였고 반쯤 정신이 나가서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 애를 잡으려고 결사적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오, 그애를 치어요, 제발, 그래요.…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 P85
그 애는 비참한 얼굴을 하더니 벤을 쳐다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불쌍한 고양이 미스터 맥그리거의 경우와 똑같았다. 그런 다음 그아이는 벤을 볼 때마다 울기 시작했다. 벤의 눈은 온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 또다른 고통받는 아이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벤은 자기도 고통받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 애는 고통을 받고 있는가? 그 애는 과연 무엇일까? - P91
그 애에게 즐거운 순간에 자연스러운 것이 있다면 온 이를 드러내면서 적대적으로 웃는 미소였다. 그 웃음은 정말 적대적으로 보였다. 그들이 뭔가 흥분된 순간에 가만히 관심을 집중하느라 고요해지면 그 애도 그들처럼 자기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화면에 빨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애의 눈은 그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P93
이때 그녀는 가족 생활을 위해 벤을 재교육시키면서 자신이 벤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가 자기들 모두에게 등을 돌리고 벤과 함께 낯선 땅으로 가는것을 선택했다고 느낀다는 것을 그녀도 알았다. - P121
그들은 그 애를 밤에 가둘 수 없었다. 열쇠가 돌아가고 빗장이미끄러지는 소리만 나도 그 애는 소리치고 버둥거리면서 분노로 폭발했다. 그러나 다른 애들은 자기 전에 하는 마지막 일이안에서 방문을 소리없이 잠그는 일이었다. 이것은 해리엇이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떤지 보러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 P128
이아이의 이름을 해리엇은 즉흥적으로 벤이라고 정하는데, 히브리어로 아들 그리고 라틴어로 좋다는 의미를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일화를 연상시킨다. 아이를 갖지 못하던 라헬이 난산 끝에 아들을 낳지만 결국 숨을 거두면서 그 애를 히브리어로 슬픔의 아들이란 의미의 ‘벤노니 라고 부른다.
그러나 남편 야곱은 아이 이름을 오른팔 같은 아이라는 의미인 ‘벤야민‘ 으로 바꾼다. 즉, 벤은 아버지가 든든하게 기대고 싶고가장 큰 기대를 갖는 아들 이름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에게는 죽음이란 가장 큰 슬픔을 안겨준 존재를 의미한다.
이름의 의미를생각하면 소설 속의 벤의 존재가 주는 이중적 아이러니는 더욱신랄하게 다가온다. 벤은 부모가 꿈꾸던 든든한 아들이 아니라가족의 화합을 파괴하며, 모든 식구들에게 (아마도 해리엇에게도)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된다. - P186
레싱은 벤의 출생에 대한 해답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로 인해 인간 사회가 느끼는당혹감의 원인을 파고들면서 인간성 자체를 분석하려는 듯이보인다. 이는 레싱이 휴머니즘이나 인간성에 대한 맹신을 가장기만적인 이데올로기적 행위라고 비판하는 점과 같이 간다. - P187
(마사 퀘스트) 마사는 어떤 구절들이 그녀에게 불쾌감을 주는데 이런 자신의 조건 반사들이 바로 "타인의 생각에대한 공포, 타인과 다를까 하여 느끼는 공포, 고립에 대한 공포,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한 공포, 그 집단 중 우리 그룹에 대한 공포에 의해 비롯됨을 발견한다. 즉, 인간은 스스로철저히 동질화하려고 노력하며 가정이나 학교나 병원이나 모든사회 제도들은 아이들을 결국 어른들과 같은 집단으로 만드는동질화 과정이다. 그러나 그런 제도의 무용성을 레싱은 벤의 의사나 교사를 통해 보여준다. - P188
레싱은 2000년 발표한 후속작 『세상 속의 벤』에서 집을 떠난 벤이 그의 힘과 모자란 지능 때문에어떻게 인간들에게 착취를 당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로브라질로 안데스 산맥으로 끌려 다니며 원치 않는 여행을 하는벤의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자신과 같은 종족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아니든 레싱의 시각은 집단으로부터 고립된 존재 쪽으로 향하고 있다. - P189
레싱의 방대한 작품세계를 요약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녀의 서술기법이나 소설 형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성장소설, 모더니스트적 수법으로부터 우화, 설화, 로망스, 공상과학 소설 등을 망라한다.
또한 그녀의 관심사는 수피즘 Sufism같은 신비주의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실존주의, 사회생물학 등과 같은 20세기의 주요한 지적 문제들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다양한 소설을 통해 결론적으로 레싱이 전념하는 한 가지 문제를 요약하라면 그것은 역시 글쓰기란 행위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결혼 생활을 포기한 이유가 글쓰기를 위해서라고 말할 만큼 작가란 직업을 항상 심각하게 생각해 왔다.
그녀는 작가의 사회적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소설가의가장 중요한 공헌은 우리가 자기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 보는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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