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수녀원은 자매에게 의사가정(Pseudo-Home)이고베로니카 수녀는 자매의 의사어머니(Pseudo-Mother)다.
생모가 그들에게 좋은 가정과 양육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처럼 수녀원과 수녀 역시 그들에게 좋은 가정과 양육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마담 당자르 역시 또 다른 어머니다. 생모,
수녀, 마담은 자매들에게 모두 왜곡된 어머니들이다. 자매하녀들의 반란은 이 수녀원과 부르주아 가정에 대한 반란이며 필시는 이 왜곡된 어머니에 대한 공격일 수 있다.

(해설)
- P124

중산층의 가장 큰 특징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 포착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마담 당자르도 위에 나열한 그 이웃들이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는지 궁금해한다. 그들은 서로를 모방한다.

(해설) - P125

마담 당자르의 눈은 보이지 않는 곳과 보이지 않는 것을모두 본다. 마담은 하녀를 감시하고, 딸을 감시한다. 마치판옵티콘처럼 그 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보고 있다. 벽으로 막힌 하녀 방 내부까지 꿰뚫어 본다. 그 방 안에서 자매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본다. 그래서 그날 밤 층계에서 크리스틴과 마주쳤을 때 자매들을 싸잡아 "쓰레기 같은 것들, 쓰레기 자매(Scum, Scum sisters) (15.63)라고 모욕한다.
- P128

여기서 ‘안다(see)‘는 말은 ‘본다(see)‘는 말과 같은 의미다. 밖에는 비가 한 달 이상 내리고 있다. 집 안에 갇힌 네 여자 사이에는 이렇게 무서운 성적 긴장이 고조되어 가고, 이치달은 긴장에 불똥을 떨어트리며 폭발시키는 것이 다미리과열 사건이다.
- P129

크리스틴은 마담의 감시하에 있지만 그녀 역시 모든 걸본다. 마담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 읽고 원하는 것이무엇인지를 미리 알아, 요리, 청소, 거스름돈 돌려주기 등을깔끔하게 처리한다. 크리스틴은 마담을 감시하고 레아를 감시하고 또 이사벨을 감시한다. 마담과 이사벨의 지배/복종관계는 크리스틴과 레아에게 반복된다.
- P129

반복과 대비는 이 극에서 가장 뛰어난 극 기교다. 8장 모녀의 사진과 9장 자매의 사진이 그렇다. 사진관은 이 극의액션이 마담 당자르의 집 밖으로 이동한 유일한 공간이다.
처음 자매는 전혀 하녀처럼 보이지 않아 여염집 아가씨처럼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남자 사진사는 곧 이들이 마담 당자르 집의 하녀인 걸 알아차린다. 레아에게 예쁘다고 하던 그의 말투는 곧 바뀐다. 그리고 하녀들이 주제넘게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을 비아냥거리며 마담당자르가 임금을 너무) 많이 지불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진값도반만 받겠다고 한다.
- P131

반복과 대비, 그리고 침묵

반복과 대비라는 케슬먼 특유의 극 기법은 4장에서도 드러난다. 공간적으로도 분리된 무대는 모녀의 식당 공간과 자매의 부엌 공간으로,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고 이 가운데침실로 통하는 계단이 무대 중앙에 압도적으로 놓여 있다.
계급적으로 이분화된 두 공간이 필연적으로 만나는 곳이 바로 이 계단이다. 모녀도 그곳을 통해 침실로 올라가고 자매도 그곳을 지나 하녀 방으로 올라간다. 두 계급은 이곳에서나뉘고 충돌하고 사건은 바로 그 계단 위에서 일어난다. 작가는 집의 중심에 놓여 있는 이 계단을 an intrinsic elementof the structure of the set" (2.3)로 강조한다.
- P133

킹은 퀸을 제압하고 마담에게 승리를 안겨 준다. 이 결말은 단순한 카드 게임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힘이 킹임을 강조한다. 킹은 남자다. 킹은 지배자다. 즉 세상은 킹의 편이고 하녀(피지배자, 노동계급, 여자)는 그 원리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 법정에서 하녀의 사정은 참작되지 않으며 법은 그들이 공격한 지배계층(중산층)을 위해 움직인다.
법은 남자다. 아무것도 힘주어 말하지 않으나 케슬먼의 페미니즘은 카드놀이에서도 진가가 나타난다.
- P136

복장 착용에는 드레스 코드의 법칙이 있어 신분의 엄중한 구별이 있다. 젠더별로도 여자는 여자 옷을 남자는 남자옷을 입게 되어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계층과 신분적 질서를 표시하기 위해 하녀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녀는 주로 검은색상하의에 목과 소매에 하얀 깃을 달고 머리에는 하얀 머리띠나 캡을 썼으며 흰 앞치마를 입었다.
- P137

아마 이 고급스러운 드레스 때문에도 사진사는 이들의신분을 착각한다. 마담 당자르의 말처럼 이들은 하녀로 보이지 않는다. 자매는 옷으로 계급적 경계에 도전하고 이 도전은 분명 계급적 위반이며 드레스 코드 위반이다. 이 위반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레아의 핑크빛 스웨터 역시 위반이고 위법이다. 하녀가작업장에서 하녀복을 입지 않고 사복(私服)을 입는다는 것.
- P138

첫 무대화 작업은 다음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다. 많은연극(희곡)이 남자들의 이야기, 부자, 형제, 남자 사이(동료,
적)의 관계를 다루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네 명의 여자를 다루는 희귀한 작품이라는 점, 그러면서 지배 피지배, 억압(성,
젠더, 계급) 등 여자들의 모든 걸 담고 있고, 여자가 여자를공격하는 희소한 범죄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기울였다.  - P142

모녀가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당할 이유가 있었을까? 바로 이 동기 없는 살인"이라는 점이 수많은 지성인들이 이 사건에 매료된 이유이기도 했다. 공연은 원작에 없는 17장을덧붙여 당대 지성인들의 뛰어난 논평들을 극에 끌어들이는시도를 했다. 작가의 보이스 오버 기법을 빌려 프로이트, 라캉, 사르트르, 보부아르의 목소리를 삽입했다. 그 17장에서자매의 우발적 살인 뒤에 숨겨진 진짜 이유와 그 사건의1930년대적 의미를 파헤쳐 보려고 했다. 그리고 더 잔혹한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오늘날 그 사건이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 이런 "왜?"의 질문을 관객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것이 TNT레퍼토리 극단의 공연 기획 의도였다.
- P143

이 사건을 최초로 젠더 관점에서 주목한 사람들은 여자정신분석학자인 재닛 플래너와 작가 시몬 보부아르다. 재닛플래너는 파팽 사건을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부르주아계층에 대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보부아르는 사건 30년이지난 후 자서전 《연륜의 힘(La Force de Lage)》(1963)에서 이 사건을 회고하며 이 사건은 마녀재판이었고 파팽 자매는 "가해자인 동시에 희생자, 순교자"라고 평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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