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시사 잡지는 소말리아 내전에 자원한 여성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는 전쟁 상태가 훨씬 살 만하다고 말한다. 군인으로 음식을 배급받고 남편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정이 평화로운 공간이라는 언어는 누구의 경험인가? 여성에게 무엇이 일상이고 무엇이 전쟁인가? 성별을 독자적인 사회적 모순, 정치 제도로인정하지 않는 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 P151
인간 현상을 거시/미시, 구조/일상, 사회/가정, 정치적인 것/개인적인 것, 공사, 전체 /부분, 보편과특수 등으로 나누는 것은 누구의 기준에 의한 것이며, 그러한 구분으로 이익을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 P153
남편이 아내를 때리다가 죽이는 것은 과실치사‘지만, 아내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때리는 남편이 가정파괴범이 아니라, 폭력에서 탈출하는 피해 여성이나 이들을 돕는 여성운동가가 가정파괴범이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가정폭력이 범죄가 아니라 일상이며,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에서 가장 폭력적인 것은 전쟁이고 그 다음이 가족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시대와 지역, 종교, 인종, 계급, 교육 수준, 일부일처제와 일부다처제를막론하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한 유일한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가정폭력일 것이다. - P154
한국은 정확한 통계조차 없으나 미국에서 살해당한 여성들의 약42퍼센트는 이전 또는 현재의 파트너에 의해 죽는다. 방글라데시, 브라질, 케냐, 태국은 50퍼센트에 육박하며 파키스탄에서는 전통적인 여성 억압 문화인 퍼다(purdah, 무슬림 여성에 대한 성차별)의영향으로 80퍼센트 정도의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다. - P154
나는 50퍼센트의 여성이 남편에게 맞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할지라도,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와 조사자의폭력 개념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뺨 한 대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남편에게 맞았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성폭력 신고율이 2퍼센트인 것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은 언제나 축소 보고된다 - P156
나는 가정도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인간 사회인 이상, 폭력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로 가정에는 폭력이 없을 것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가정폭력의 발생 기제라고 본다. 폭력으로 평화로운 가정이 깨져서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으로도 (남성 중심적) 가정이 깨지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 P156
무엇이 사회이며, 사회는 어디에 있는가? 가정과 사회는 다른가? 남편에게 당하는 고문과 국가로부터 당하는 고문의 내용은 큰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 있긴 하다. 국가 기관에서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 가해자에게 밥을 차려주지는 않아도 되며, 평생 맞는 것도아니다.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결국 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가정은 치외법권 지대이며 아내를 구타하는 남성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이해와 지지를 받는다.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성역할 규범이 남편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목숨을위협받는 폭력 상황에서도 가해 남편의 권력(‘버릇‘)을 고치고 가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전쟁, 조직폭력, 학교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감동시켜 폭력을 멈추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 P157
이제까지 여성은 역사 밖에, 여성 문제는 정치 밖에존재했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등 기존의 정치 전선 자체가남성의 관심사에 의해 설정된 것이기 때문이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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