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Hanna Arendt, 1906~1975, 전체주의 비판자이며 참여 민주주의옹호자인 독일 출신의 유대계 여성 정치철학자)가 말했듯이, 사유하지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 P56

사회운동 중에 여성운동만큼 편견에 시달리는 운동도 없을 것이다. 아니, 아예 여성운동을 사회운동으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여성운동에 대한 비난은 장애인운동이나 노동운동, 평화운동,반미운동 등 다른 사회운동에는 절대로 적용될 수 없는 말들이다.

평화운동을 ‘먹고 사는 게 해결된 한가한 사람들의 운동‘, 장애인운동을 ‘중산층 지식인들의 운동‘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노동운동가들은 노동 의식만 있지 사회 의식은 없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여성운동가에게 사회 의식이 없다는 말은, 여성문제는 개인의 문제이지 사회 문제가 아니며, 따라서 여성 의식은사회 의식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 P58

어떤 면에서 부르주아 지식인 남성이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옹호하는 ‘좌파‘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력, 남성의 주체성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남성이여성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기 존재를 상대화해야 하는, 자신을 후원하는 ‘아버지‘를 버려야 하는,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그야말로 존재의 전이인 것이다.
- P60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다.

또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
- P61

한국 사회에는 유난히 남자의 기(氣)를 살리자는 식의, 남성을불쌍히 여기는 담론이 만연해 있다. "남자는 독립적이고 강하다."
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은, 실은 서구 백인 중산층을 기준으로 했을때의 이야기다. 

한 남성 시인은, 서부 영화에서는 악당이 쳐들어오면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네가 가족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아마 한국에서라면 아버지와 아들은 "엄마가 나가 봐."라며 치마 뒤로 숨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 P62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의 통계들은, 한국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확대와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권한 척도는 현저히 낮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국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가부장적신념이 강한 사회인데도, 왜 남성을 "약하고 불쌍하다."고 이야기할까? 왜 그토록 남성들은 열등한 여성들의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할까? 혹 이러한 ‘응석‘이 남성의 성장과 우리 사회의 성숙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 P62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회는, 갈등 없는 사회가 아니라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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