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기획자들이 파악했듯이, 집단농장이란 수백만의 사람을굶겨 죽이는 것이었고, 따라서 다시금 써먹어야 할 방식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이번에는 수백만이 아닌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일 작정이었다. 과거 소련의 집단화는 초기에는 비효율성으로 인한 의도치 않은결과에 따라, 그리고 비현실적인 식량 생산 목표 때문에, 그다음에는1932년 말과 1933년 초의 의도된 악의적 착취의 결과로 우크라이나에 기아를 몰고 왔다. 이와 달리 히틀러의 집단화는 사전에 짜놓은아사 계획으로, 그 대상은 바로 달갑지 않은 소련 주민들이었다.  - P290

일본은 1940년 여름부터 줄곧 소련과 중립 조약을 체결할 길을 찾고 있었고, 1941년 4월 드디어 한 가지 결실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유럽 지역에 파견한 첩보원들 중 소련 전문가이자 그해 봄 발트해 연안, 동프로이센에 위치한 쾨니히스베르크에 파견된 스기하라지우네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들어갈 날짜를 점치고 있었다. 

그는폴란드인 조력자들과 함께 앞서 독일이 폴란드로부터 빼앗은 땅을포함한 독일의 동부 지역을 둘러봤다. 독일군의 움직임을 관찰한 스기하라는 1941년 6월 중순 그에 관한 결과물을 내놓는다. 

그가 도쿄로 보낸 보고서는 당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퍼져 있던 정보원들이 보낸 수천 가지 지역 동향 보고 중 하나로서, 독일이 늦은 봄이나이른 여름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협정을 깨고 소련을 칠 것이라는내용을 담고 있었다.‘

스탈린 자신도 독일이 그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를 이미100차례 이상 받았지만 이를 무시해버렸다. 그의 한결같은 전략은 독일이 서쪽으로의 전쟁을 계속하도록 부추기는 것이었다.  - P295

스탈린은 분명 언젠가 독일과도 전쟁을 치를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1941년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독일의 공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아주 명백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양국, 곧 독일과 소련을 분열시키기 위한 영국의 선전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 P296

스탈린은 다른 무엇보다, 그 어떤 첩보 보고서에서도 겨울 장비에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던 데서, 독일이 겨울용 장비도 갖추지않은 채 공격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 P296

<독소전쟁>

히틀러의 심복 괴링이 1941년 9월에 벌인 일들은 과거 1932년12월 스탈린의 심복 카가노비치가 벌였던 일들과 놀랍도록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이후 몇 개월 동안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을 것이 확실한 식량 정책 지침을 내려보냈다. 또한 자신들의 정책이야기할 기아를 인도적 비극이 아닌, 적들이 시도한 전술 혹은 흔들기로 여겼다. 

카가노비치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괴링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굶주림은 곧 냉혹함이 필요한 곳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려는적의 무기라고 지시했다.  - P305

앞서 1932년과 1933년 스탈린과 카가노비치는 자신들과 우크라이나 인민들 사이에 우크라이나 정당을 위치시키고는 이들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자에게 그곳 곡물 공출 책임을 맡게 했으며, 만약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들에게 비난이 떨어지도록 했다. 

히틀러와 괴링 역시 1941년과 1942년 자신들과 굶주린 소련 인민들 사이에 독일 국방군을 놓아두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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