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국가사회주의가 내세운 전제는 독일인의 인종적 우월성이었는데, 나치는 폴란드인들이 일궈놓은 폴란드 문명사회 앞에서도 이를 적어도 스스로에게만큼은 입증해 보여야 했다.
따라서 오랜 역사를 보유한 폴란드 크라쿠프에서는 이름난 대학의 교수들이 한 명도빠짐없이 강제수용소로 보내졌다. 조만간 아돌프 히틀러 광장이라는새로운 이름을 받을 크라쿠프 시장 앞 광장에서는 위대한 낭만주의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치의 동상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상징적인 동시에 실용적인 방법이었다. 크라쿠프대학은 독일의 어떤 대학보다 깊은역사를 보유한 대학이었고, 미츠키에비치는 살아생전 괴테만큼이나유럽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관그리고 역사의 존재는 이른바 지성을 갖춘 폴란드인 계급이 있음을보여주는 것으로서 독일의 계획에 걸리적거릴 뿐 아니라 나치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도 골칫덩어리였다. - P233
이제 그곳에는 소련을상징하는 망치, 낫, 붉은 별이 휘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그들이폴란드를 잊었을까? 아니다.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이제 독일의 손에 떨어진 서부 지역 대학들이 문을 닫고, 소련 관할이 된 동부 지역대학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학으로 바뀌던 바로 그 순간에도과거 이름난 인문학자 그리고 과학자였던 예비군 장교들을 주축으로폴란드 대학에서 이뤄지던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 P239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1939년에서 1940년에 소련이 폴란드인 수용소를 설치하는 코젤스크의 옵틴수도원을 무대로 하는 장면이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으로 꼽히는 이 결정적 장면은 젊은 성자와 수도원의 대심문관이 신이라는 존재 없이 도덕이라는 것이 가능한가?‘를 두고 나눈 이야기다.
만약 신이 사라진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가? 1940년, 소설 속의 이대화가 실제로, 바로 그 장소에서 이뤄졌다. 수도원을 책임지던 수도승 몇몇은 내무인민위원회 소속 심문관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었고, 이들은 바로 저 질문에 대한 소련의 대답을 몸소 보여주는 자들이었다.
소련의 대답은 간단했다. 신이 사라진 이곳에서만이 인간의 진짜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 반대로 여러 폴란드 장교는 비록 의식하진않았지만 이와 다른 대답을 내놓고 있었다. 어떤 짓도 허용되는 이곳에서는 신이야말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안식처다.
그들은 수용소를예배당으로 여겼으며, 또 그곳에서 기도를 올렸다. 실제로 수감자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하기에 앞서 부활절 예배에 참석했다. - P246
대숙청 때와 마찬가지로 희생자의 가족 역시 처벌 대상이 되었다.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을 모두 쏴 죽여야 한다는 제안을 올리기 사흘 전, 베리야는 그들의 가족들을 모두 추방하라고 명령했다. 소련은이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 사는지 이미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련이 포로들에게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도록 해준 이유였다.
준비를 마치고 벨라루스 서부와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3인 위원회는 카자흐스탄 특별 정착지로 보낼 6만667명의이름이 적힌 서류를 준비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들 대다수는 어느 명령서에 적힌 것처럼 "앞서 있던 자들의 가족이었으며, 따라서대개 남편이나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이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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