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감동한 여자가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손을 내밀었을 때 남자는 깜짝 놀랐다. 여자는 마치 낯선 사람을 처음 보듯이 안경 뒤에서 깜빡이는 남자의 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이의 눈처럼 순수하고 온화한 푸른 눈동자가 있었다.
여자가 그의 눈을 들여다보자, 갑자기 푸른빛이 더욱 깊어지면서 지극한감정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 불현듯 여자는 다른 어떤 남자에게서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전혀 새로운 온기, 애정, 신뢰 같은것을 느꼈다. 그때까지 모호했던 여자의 감정은 확신으로 변했다. 여자는 그토록 진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남자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었다.
여자의 돌변한 분위기를 감지하자, 남자는눈가가 붉어졌다. 몹시 혼란스러워하면서 숨을 깊이 내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 P55
불현듯 여자는 놓쳐버린 풍경들에 대한 아쉬움이무디고 메말랐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난생처음웅장한 대자연을 바라보면서 여자는 마치 쟁기가 땅을 갈아엎듯이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어놓는 여행의 위력을 실감했다. 여행은 일상의 삶에 익숙해져서 단단하게 굳어버린 영혼의 껍질을 단번에 벗겨버리고, 저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변신을 향한 욕망이 언젠가 열매로 맺어질 씨앗을 심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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