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을 통해 계급과 젠더를 개조한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종종 인종 문제와도 씨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투쟁은 더 깊은 배움으로 이어졌다. 가령 여성 코커스가 주로 백인 사무실에서 생겨났을 때에도 흑인 여성이 최소한 한두 명 이상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성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 역시 드러났다. - P359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밝혀진 바에 따르면, 특히 백인 여성들이 백인 남성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적극적 평등조치에 반대한다(질문을 어떤 문구로 던지는가에 따라 반대하는 비율은 달라진다).30 이러한 역설은 여러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백인 여성들이 이른바 비백인의 위협에 대해 백인 남성들과 일체감을 느낀다는점에서 인종적 문제 틀이 크게 작용한다.
또한 일반 대중 차원에서는 정치경제학보다 개인적인 정치를 선호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인 공적 생활 참여보다는 라이프스타일 선택의문제로 해석한다. - P364
이런 투쟁들은 이론을 위한 수많은 질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성적 분업은 어떤 의미와 효과를 지니는가, 2차대전 이후 시기에 여성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식과 행동의 원천은 무엇인가, 성차별과 계급·인종 억압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작업장에 근거한 수행은 의식과 사회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자본주의와 노동과 국가 정책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데서 어떤 관계를 맺는가 등의 질문을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변화와 거기에 필요한 주체적 행위와 힘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 P366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여성들에게 언제나 양날의 칼이었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삶을 규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필요한 자원을 제공했기때문이다. 복지국가는 언제나 정치적 투쟁의 무대였다. - P405
복지국가에 대한 최초의 공격은 198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복지프로그램의 비용과 규모가 집중 공략 대상이었다. 요부양가족아동부조와 그 수혜자 저소득층 독신모는 워낙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로널드 레이건의 경기 회복 계획에서 손쉬운 공격 목표가 되었다.
정부의 예산 삭감론자들은 요부양가족아동부조 때문에 정부 원조를 받을 자격이 없는 여성들과 쓸데없이 몸집만 큰 관료기구에 예산이 낭비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국고가 바닥나고 예산 적자가 커진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또한 복지에 의존하는 여성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달랐다.
평균복지 급여는 1970년 월 178달러에서 1980년 275달러로 올랐다. 그렇지만 이 10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실질 구매력은 40퍼센트 이상 떨어졌다. 어떤 주에서도 요부양가족아동부조와 식품교환권 액수를 합쳐봐야 3인 가족이 공식 빈곤선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 P409
국가적인 경제 위기를 이 비용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사실 요부양가족아동부조는 연방 예산의 1.1퍼센트에 불과했다. 식품교환권과 보충소득보장 비용을 합쳐도 3퍼센트였다. 요부양가족아동부조의 추가 비용은 주에서 부담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보장‘과 국방비는각각 연방 예산의 20.3퍼센트와 28퍼센트를 차지했다.
https://www.mnd.go.kr/mbshome/mbs/mnd/subview.jsp?id=mnd_010401030000 세계 국방비 비교ㅡ미미 - P410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위한 의제를 실행하려면 허구를 폭로하고, 현실을 설명하고, 설득력 있는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는 것 이상이필요할 것이다. 평등을 달성하는 것은 힘의 문제다. 경제·사회적 힘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 힘이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저소득층여성과 그 동맹자들의 힘은 쇠퇴기에 있다. 그러나 평등 옹호론자들은 새로운 동맹을 형성하고 새로운 전략을 궁리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다가오는 미래에는 놀라운 힘의 이동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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