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흐름이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사태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것은 가장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우리로서는 전혀 예상할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느닷없이 진동하며, 조금이기는 하지만 여태껏 굳게 닫혀 있던 심연의 문이잠시 열려 그 문이 다시 오랫동안 닫히기 전에, 그 틈새에서두세 마리 진실의 새가 밖으로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 P213
특히 냉철한 사람들은 편지 뒤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내게 남아 있는 여생과 건강을 소중히 하고 싶습니다>). 신문들이 들떠서 칭찬하고 있는 와중에 이런 질문을 한 사람도 있었다. <볼꼬보이가 어떻게 이 소설의 출판을 허락한 거죠? 저는놀랐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투옥된 것은 아닌지 걱정되네요. 빨리 답장해 주세요.> 혹은 이런 것도 있었다. <왜 당신이 뜨바르도프스끼와 함께 투옥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 P215
진실이라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움이 많고 얌전해서, 거짓이 뻔뻔스럽게 날뛰는 사이에도 잠자코 있게 마련이다. - P220
우리와 함께 수용소군도의 생활을 자세히 보았던 독자는낮은 목소리로 인터내셔널을 부를 만한 장소도, 시간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벌채 작업 후에 겨우 걸으면서 노래를 부를 힘이 남아 있었겠는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면하루 종일 소지품 보관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놈들이었을 것이다! - P224
그들을 제일 분개시킨 것은 <어찌하여 슈호프는 싸우지 않았는가?>라는 것이었다. 수용소 제도를 타도할 것인가, 아니면 총을 들고 싸울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쓰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그들은 싸우지 않았는가> 하고 물을 뿐이다(나한테는 이미 껜기르 수용소의 반란을 그린 원고가 준비되었으나 나는 그 원고를 발표할 용기가 없었다...…).
자기는 투쟁의 1그램도 나타내지 못하면서, 우리한테는 톤단위의 투쟁을 요구하고 있었다! 항상 그랬다. 전투가 끝나면 갑자기 많은 용감한 자들이 나타나게 된다. - P226
이 말은 참 맞는 말이다 ㅡ 매 맞을 때 고함을 질러라! 나중에 아무리 고함을 쳐도 믿는 사람은 없다. - P239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죄수나 당신의 책을 읽으면 슬프고 화가 치밀 것이다.> <스딸린 시대에 제정된 25년의 형기에 관한 법률이 지금도유효하다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가?><우리가 다시 아무런 죄도 없이 투옥되었는데, 대체 지금은누구의 <개인숭배> 시대라는 말인가?><검은 안개가 우리를 감싸고 있어서,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하고 있다.><어찌하여 볼꼬보이와 같은 사람이 처벌되지 않았는가? 그와 같은 사람이 지금도 우리의 교육자로 되어 있다.>
솔제니친이 받은 편지들(미미) - P241
이제 와서 나의 책이 해를 미친다고 공인되고 그 출판이 잘못되었다며(〈문학에 있어서 주의주의가 낳은 후유증>), 이미공공 도서관에서 몰수된 지금, 이반 제니소비치의 이름이나 나의 이름, 혹은 수용소군도를 입 밖에 내기만 하여도 돌이킬수 없는 반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 P243
1964년 12월부의 소련 정부의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쓰여 있었다. 터무니없이 사악한 짓을 했던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사정이 있어도, 공정한 처벌을 면할 수가 없다… 일부 민족을 모조리 말살하려던 파시스트 살인자들의 나쁜 짓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이것은 전쟁 범죄가 있은 후 20년이 지나고 서독이 시효를적용하려고 한 데에 반대하여 발표했던 성명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똑같이 <일부 민족을 송두리째 근절하려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단죄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 P246
소련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사회적 사건이 일어나도 두 가지 길밖에는 없었다 묵살되거나, 아니면 왜곡되거나.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큰 사건 중에서 이 두 가지의 길을 벗어난것은 하나도 없었다. - P257
그런데 1955년 초에는, 투옥 기간 전반에 걸쳐서 보상한다는 계획안이있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동유럽에서도 그렇게 실시되었다. 하지만동유럽의 경우는 그 인원수와 연수가 적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다 미리 계산해 보고 놀랐다. 이것을 실시하면 국가가 파산하겠다! 그래서 2개월의 보상을 실시하도록 했다. - P259
<독립 채산제>란 이런 것이다. 즉 죄수는 자유 고용인과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그 70퍼센트의 보수밖에 받지 못한다(그것은 웬일일까? 그가 만든 제품에서 이상한 냄새라도 나는가? 만일, 이것이 서구였다면 착취와 차별이 되었을 것이다). 그 나머지 보수 중에서 50퍼센트는 꼴로니야를 위해 공제되었다(수용소 구내의 유지비, 실무 직원과 경비견을 위한 비용). 그 나머지에서 또 식비와 의류비를 제한다(생선 대가리가 들어 있는 수프를 먹고 있는데). 그리고 마지막에 남은 금액은 <석방 때까지>죄수의 계좌에 들어가 있게 된다.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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