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끄들과 바깥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체로 적대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우호적이었다. 게다가 이들 인생의 실패자들, 항상 취기가 가시지 않을 것 같은 파산자들이 오히려타인의 불행에 민감하였고, 투옥된 사람들의 불행과 그 불공평한 투옥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장교나 감시원이나 경비병들이 직무상 이유에서 못 본 체 눈을 감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이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눈을 감아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바깥세상 사람들 ㅡ수용소 주변에 거주하며 수용소의 일을 일부 맡아 하던 사람들 (미미) - P329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명백해진 바와 같이 수용소로 긁어모은 것은 사상적 이단자들만도, 스딸린이 국민에게 다 함께몰려가도록 제시한 노선에서 벗어난 사람들만도 아니었다.
수용소로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은, 정치적 필요성이나 테러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경제적 꿍꿍이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어쩌면 그것은 스딸린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수용소(그리고 유형) 덕분에 우리 나라에는 1920년대의 위기적 실업 상태를 벗어날 수 있지 않았는가? 1930년부터는 사양길로접어든 수용소에 다시 활기를 넣어 주기 위해 운하 건설을 생각해 낸 게 아니라, 이미 계획된 운하의 건설을 위해 황급히수용소로 사람들을 긁어모았던 것이다. 재판소의 업무량을결정한 것은 실제적인 <범죄자>들이나 <혐의자들>의 수가 아니라, 경제 관계 부서의 요청이었다. 백해 운하 건설이 시작되자마자 솔로프끼에는 죄수가 부족하다고 야단이었고, 그 때문에, <제58조> 해당자의 형기 3년은 너무 짧고 비경제적이므로 대번에 두 차례의 5개년 계획 기간과 맞먹는 형기를 과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던 것이다.

ㅡ그래서 이후 형기는 한번에 10년, 그러다 20년(미미) - P344

수용소의 어느 면에 경제적 이점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의 증조부격인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속에 이미예언된 바 있었다. 사회주의하에서는 아무도 하려 들지 않는천한 일이나 특별히 힘든 노동, 바로 이것이 제끄들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그것은 주거 시설이나 학교, 병원, 상점 같은 것을 곧 세우지 않아도 될 만큼 인적 없는 먼 변방에서의 작업이었고, 20세기 전성기에 곡괭이와 삽만 가지고 하는 작업이었으며, 아직도 경제력이 미약한 조건하에서 사회주의의 위대한 건조물을 세우는 작업이었다.
저 위대한 백해 운하에서는 자동차조차 진귀한 물었이었다. 모든 것이 수용소식 표현처럼, <방귀의힘>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 P345

만약에 죄수들이 아니었다면 대체 누가 영하 30도의 혹한속에서, 5월 1일과 11월 7일 이외에는 휴일도 없이 매일 10시간씩 벌목 작업을 계속할 수가 있었겠는가? 게다가 매일 아침날이 새기도 전에 숲까지 7킬로미터를 걷고 저녁에도 역시 7킬로미터를 걸어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볼가 수용소, 1937년)
- P345

사실 대체 누구를 제스까즈간 탄광 속에 넣고 매일 12시간씩이나 건식 굴착기로 일을 시킬 수가 있었겠는가? 그곳은 광석에 함유된 규산류 분말이 짙은 안개처럼 가득 차 있는데도마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4개월 후에는 불치의 규소폐증에 걸려, 죽기 위해 병원으로 실려 가는 것이었다. 
보강공사도, 누수 방지 공사도 되어 있지 않은 갱도 속으로, 브레이크도 없는 승강기에 대체 누구를 태워 내려보낼 수가 있었겠는가? 이 20세기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안전장치 같은 것도 설치함이 없이 대체 누구에게 일을 시킬 수가 있었겠는가?
- P346

수용소는 그 순종적이고 값싼 노예 노동 때문에 더없이 유익한 것이었다. 아니, 값이 싸게 먹혔다기보다 아예 무료였다.
고대에도 노예를 사는 데 어느 정도의 돈은 지불했지만, 수용소 죄수를 사는 데는 아무도 돈 한 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48

그러나 백골 위에 세워진 대리석에는 앞으로도 그들의 잊힌 이름이 새겨지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 P348

1949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살레하르뜨 - 이가르까 철도또한 그 철도로 운반할 화물이 없어서 무용지물임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이 건설도 중지되었다. 이 오류를 누가 범했는가는 감히 입 밖에 내기조차 두렵다. 다름 아닌 <그분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 P356

소련이 승리의 나팔을 불어 대며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바로 그날에도, 랴잔의 내 집 창문 맞은편에서는 네 사람의 <자유인> 여성들이 누추한 제끄식 상의에 솜바지로 몸을 감싸고 <들것>으로 시멘트를 4층까지 나르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이렇게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인공위성은여전히 돌고 있지) 않느냐!」
인공위성이 돌고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과연 언제까지 돌 수 있을까?
- P363

생각하자! 불행에서 어떤 결론을 찾아보자.
이 무한히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서 죄수들의 두뇌와 영혼은 활동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들의 무리를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득실거리는 이와 비슷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창조의 으뜸이 아니겠는가? 언젠가는 그들 속으로 신이 희미한 불꽃을 불어넣을 것이 아닌가? 지금 그 불길은 어떻게 되었나?
여러 세기 동안, 범죄인에게 <형기>가 주어지는 것은, 범죄인이 그 형기를 통하여 자신의 범죄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며,
회개하며 차츰 교정되어 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수용소군도는 양심의 가책 따위는 알지 못한다!>주민 1백 명 중에서 5명이 형사범인데, 그들은 자신의 범죄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용기 있는 일이었으며, 앞으로 이런 범죄를 멋있게, 좀 더 적극적으로 하려고 꿈꾸고 있었다. - P372

자살의 대부분은외국인, 서구의 사람들한테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는 군도에 이주하는 일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충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끊는 것이다. 그리고 또 충성파의 사람들이 있다(하지만 예의 그 돌대가리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혼란하고, 끊임없이 귀가 울렸을 것이 이해가 된다.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폴란드의 귀족인 조샤 잘레스카는 소비에뜨의 첩보 기관에 근무하는 것으로 일생을 <공산주의의 대의>에 바친 여성이었으나, 그녀는 신문을 받을 때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목을 매어 죽으려 하다가 구조되고, 혈관을 절단하려 했으나 저지당했고,
7층 창문에서 떨어지려 했을 때 졸고 있던 신문관이 마침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총살하기 위해 그녀를 세 번이나 살렸던 것이다.) - P376

그리하여 이것이 결론이다. 그날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는 것이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말은 그냥 말뿐이며,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런데 이 말은 어느새 본래의 의미를 간직하면서무서운맹세가 되어 버린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맹세를 한 자는 그 짙붉은 불길 앞에서 끄떡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불행을 인류 공통의 불행으로 여기고, 전세계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수용소 생활의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여기서 길이좌우로 갈라지고, 한쪽은 위로 오르고, 다른 쪽은 밑으로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가면 생명을 잃고, 왼쪽으로 가면 양심을 잃는다.
- P379

입센ㅡ산소가 부족하면 양심까지 메마른다

<입센ㅡ인민의 적>중에서 - P381

만일 본질이 중요하다면, 일반 작업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더기 옷에도, 손 껍질이 벗겨지는 것에도, 양이 적은 조잡한식사에도 견뎌야 했다. 그러다가 자칫하면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고통을 참으며 자랑스럽게 처신해야 한다. 그럴 때, 즉 당신이 위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때, 당신들은 주인들의 크고 침침한 눈에는가장 위험한 인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을 공격할방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 P389

되돌아보면, 나는 모든 의식 있는 생활이 나 자신과 내가의도하는 일조차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에게 있어서 멸망을 의미했던 것이 오랫동안 행복으로 생각되었고,
나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했던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는언제나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다가 그 큰 파도로 수영이 미숙한 사람을 밀어서 해변으로 옮겨 가게 하듯이, 나도또 점차 불행을 맞아, 몹시 통증을 느끼며 지반이 단단한 곳으로 되돌아갔다. 이리하여 나는 항상 바라던 바로 그 길로 지나갈 수 있었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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