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녀는 자기 아빠를 무척이나 따랐었다. 이 소녀는 그 후 더 이상 학교에서 배울 수가 없었다. (그 또래의 학생들이 너희 아버지는 해독 분자야! 하고 멸시했으나, 이 소녀는 우리 아빠는 좋은 사람이야! 하고 응수했었다.) 이 소녀는 그 재판이 있은 다음 고작 1년을 넘기지 못했다(그때까지결코 앓은 적이라고는 없었다). 이 1년 동안 이 소녀는 한 번도 얼굴에 웃음을 짓지 않았고 노상 고개를 떨어뜨리고 다녔다. 마을의 할머니들은 땅을보고 다니면 곧 죽는다고 예언했다. 이 소녀는 뇌막염으로 죽었다. 죽을 때<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 나한테 아빠를 돌려줘요!> 하고 한없이 외쳤다. 우리가 수용소에서 죽어 간 사람들을 계산할 때 우리는 그보다 두 배, 세 배의 사람들이 더 죽어 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P199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총살되었다 — 처음에는 수천 명이,
그다음에는 수만 명이. 우리는 나눠 보고 곱해 보고, 그리고한숨을 쉬고 저주해 본다. 그러나 하여튼 이것은 엄연한 숫자인 것이다. 그 숫자는 우리의 머리를 찌르지만, 다음에는 다시잊히게 마련이다. 만약 총살된 사람들의 친척들이 혹시 언제고 출판사에다 처형된 사람들의 사진들을 넘긴다면, 몇 권의앨범이 출판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을 대강 훑으며 그들의 눈을 건성으로 보기만 해도 우리는 자기의 남은 인생을 위해 많은 것을 얻을지 모른다. 그런 독서는, 글자도 거의 없지만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겹겹이 쌓여 남아 있을 것이다.
- P214

예심 중인 미결수들, 수용소행의 기결수들, 사형수들, 특사를 받은 사형수들, 그리고 절도범들까지 온통 뒤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며칠 동안 커다란 감방에서 팔을 올릴 수도내릴 수도 없었고, 나무 침상 쪽으로 꽉 끼어 있는 사람들은무릎이 부러질 정도로 비좁은 상태에서 서 있어야 했다. 이때는 겨울이었는데도 죄수들은 질식하지 않으려고 창문의 유리를 모두 부숴 버렸다(이 감방에는 1898년부터 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의 당원이었다가 레닌의 4월 테제 이후 1917년에볼셰비끼당을 떠났던 호호백발의 알랄리낀이 이미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 P218

이따금 밤에 자물쇠가 철컥거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를? 내가 아니구나! 교도관이 어떤 하찮은 일로 나무문을 연 것이다. 창문턱에 있는 물건들을 치워라!」 이 자물쇠소리 때문에 14명의 사형수들은 모두 1년은 수명이 줄었을것이다. 아니, 이렇게 쉰 번만 자물쇠를 열면 더 이상 총알도필요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 무사히 지나갔으니 교도관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지경이다. 「네, 곧 치우겠습니다, 교도관님!」 - P226

강제적인 인공 영양 공급. 이와 같은 방법은 의심할 여지없이 동물원에서 그대로 모방해 온 것이다. 그러한 방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폐쇄 사회에서만이 가능하다. 1937년경에는 인공 영양 공급도 이미 크게 성행했던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야로슬라블 중앙 형무소에서 집단적으로 단식 투쟁을벌이던 사회주의자들 전원에게 보름째 되던 날 인공 영양 공급이 강제적으로 실시되었다.

이 방법은 강간과 매우 흡사한 데가 많다. 아니, 그것은 강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즉, 4명의 덩치 큰 남자들이 한 사람의 약한 상대방에게 달려들어 그 사람의 가장 소중한 것을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 P252

사물과 행위는 어떠한 측면에서 관찰하느냐에 따라서 그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 P260

만일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맨 처음 보이는 것이 미쳐버린 감방 동료의 눈빛이라면, 인간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에즈음해서 어찌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 P271

당신은 이웃 사람이나 동료들을 보고 이제 저항하자, 아니면 항의하자고 눈짓한다. 그러나 당신의 동료들 제58조)의사람들은 당신이 그곳에 오기 전에 이미 한 사람씩 강탈당했으며 얌전하게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을 뿐이다. 당신에게서눈길을 피한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더 지독한 것은 그들이당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그것이 강탈이나 약탈이 아니라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듯, 풀이 자라고 비가 오는것을 바라보듯 하는 것이다.
- P294

뿌시낀, 고골, 똘스또이 등의 이름을 딴 수용소는 없는데,
고리끼 수용소는 있다. 게다가 한두 개도 아닌 것이다. 또 따로 막심 고리끼기념 강제 노동 채광장(엘겐에서 40킬로미터)도 있다! 그래요,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고리끼...... 동지여, <당신의 마음과 이름을 가지고> 입니다[마야꼬프스끼의 시 「레닌 동지와의 대화」(1929)의 한 구절, 우리가 사색하고, 숨 쉬고, 투쟁하고, 살게 하는 것은 모두 당신의 마음과 이름을 통해서입니다.> -옮긴이주], 만일 적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별생각 없이 한마디 한거지만, 이미 당신은 문학에선 존재하지 않습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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