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에서 예심 판사 뽀르피리 뻬뜨로비치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놀랄 만큼 섬세한 지적을 해준다. 즉 당신 같은 지식인들하고 직접 이러한 숨바꼭질을 해본사람만이 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과 같은 지식인이 상대라면, 나는 직접 그 범죄를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 P189

당신네들은 스스로 그것을 해치워 완전한 형식으로 만들어가지고 나한테 가져오니 말입니다. 사실 그렇다! 지식인은체호프 작품에 나오는 <악인>처럼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할수는 없다. 그는 의무적으로 모든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때문에 그는 죄를 뒤집어쓴다.
- P190

그때로부터 10년이 흐르고 다시 15년이 흘렀다. 나의 청년시절의 무덤은 무성한 풀로 뒤덮여 버렸다. 나는 형기를 마치고도 기약 없는 유형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도 - 수용소의 <문화 교육부>에서도, 지방 도서관에서도,
중소 도시에서도 - 그 어디서도 소비에뜨의 법전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고, 내 손에 들어 본 적이 없고, 또 살수도, 구할 수도, 심지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 P192

S. P. 멜구노프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제정 시대의형무소는 행복한 추억이다. 지금도 정치범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때의 형무소를 회상하곤 한다. 33바로 여기에 관념의 변화, 전혀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다.
고골 시대의 농민이 제트기의 속력을 이해할 수 없듯이, 〈군도>의 인육 도살장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신문의 진정한 가능성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 P207

 하마터면 그때 또 한 명의 학교 친구가 나 때문에 형무소에 끌려 들어올 뻔했다. 나는 그가 체포를 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2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지금까지 출판되어 나온 자네의 작품을 보니, 자네는 인생을 일방적인 각도로 평가하고 있어. 대외적으로 자네는 서독이나 미국과 같은 서방에서 파시스트 반동의 기치가 되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아직도 자네가 레닌을 존경하고 사랑하리라고 확신하지만, 그 레닌과 마르크스, 엥겔스는 자네를 가장 준엄한 방법으로 규탄하고 있을 걸세. 바로 이 점을 이해하기 바라네!>나는 이편지를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아아, 자네가 그때 체포되지 않은 것이정말 유감이군! 자네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은 셈인가!> - P210

1 나치스의 비밀경찰과 비교할 때 그 시대와 방법이 매우 흡사함을 알 수있다. 나치스의 게슈타포와 MGB를 다 거친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디브니치의 경험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비교가 될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전도사로서독일에 망명 중이던 그는 독일 내의 러시아 출신 노동자 사이에서 공산주의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게슈타포에 구속되었었고, 소련으로 송환된 후에는 국제 부르주아지와 내통한 죄목으로 MG3에 제포되었다. 그의 결론은 MGB가더 나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고문을 당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게슈타포는 끝까지 사실을 알고자 했고 혐의가 풀리자 즉시 석방했다. 그런데MGB는 사실을 추구하지도 않았거니와 일단 잡아들인 자를 놓아줄 생각은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 P225

똘스또이가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썼는지 기억하는가?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권한을 가진 그런 직책에 있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손아귀에 들어 있으며,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죄를 뒤집어씌워 잡아들일 수 있는 권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푸른 제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에는 아무것도 덧붙일 말이 없다!) 이 권력 의식은 그에게 있어 <근무상의 주요한 흥미와 매력>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반 일리치에게는 <이 권력을 자비롭게 사용할수 있다는 가능성>도 매력이었는데, 이것은 우리의 푸른 제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 P228

그들의 성(姓)을 보면, 마치 그 성에 따라 기관에 고용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1950년 초 께메로보주 보안부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 검찰관 〈뜨루뜨네프(수컷 벌, 무위도식하는 사람)〉, 신문부장 <시꾸르낀 (이기주의자)> 소령, 그 차장 〈발란진(수프 - 수용소에서 나오는것)〉 중령, 신문관 〈스꼬로흐바또프(잽싸게 훔치는 사람)〉, 아니 이 이상 더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모든사람이 죄다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볼꼬빨로프(늑대 가죽을 벗기는 사람)와 그라비센꼬(약탈자)에 대해서는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과연 이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할 수있겠는가?
- P238

가령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할까! 흉악한 일을꾸미는 악한들은 어디엔가 있게 마련인데, 그 악한들만을 골라내서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러나 선과 악의분기선은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다 가로놓여 있다. 그러니 누가 자기 가슴의 한쪽을 박멸시킬 수 있겠는가?
한 심장이 살아가는 동안 이 선(線)은 때로는 열광적인 악으로 짓눌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둠을 제거하는 선(善)에 공간을 내주면서 심장 위에서 이동을 계속한다. 동일한 인간이라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어떨때는 악마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성인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름만은 변하지 않고, 우리는 모든 것을 그 이름의 소행으로 돌리고 만다.
- P257

선에서 악까지는 단 한 걸음밖에 안 된다는 속담이 있다.
따라서 악에서 선까지도 마찬가지다.
- P258

물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하나도 신기할 것이 못 된다.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선의 증거가 될 수없듯이(그 사람은 참 가족적인 분이야. 악한들일수록 자주이런 말로 정당화된다). 

- P264

그러나 이런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한 짓을 하기에 앞서 인간은 먼저 그것을 선이라고 믿어야 하고 자기 행위의 합법성을 찾아야 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맥베스」에서는 정당화가 약하다 양심이 그를 괴롭히기때문이다. 그리고 이아고는 어린 양과 다를 것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악당들의 상상력과 정신력으로는 불과 열 사람 정도의 사람도 제대로 죽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이데올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 P266

이데올로기ㅡ 그것은 사악한 일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요한 장기간에 걸친 강인함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이론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자신의 악행을 은폐하게끔 도와주고, 비난과 저주를 듣는 대신 칭찬과 존경을 듣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종교 재판관은 그리스도교로, 침략자는 조국의 찬양으로, 식민주의자는 문화로, 나치스는 인종으로, 자코뱅파(초기와 후기의)는 다가올세대의 평등과 우의와 행복으로 무장을 했던 것이다.
- P266

뻬뜨로그라뜨와 오데사의 체까 요원들은 그들의 손에 잡힌죄수들을 다 총살하지 않고, 그 일부를 시립 동물원의 먹이로(산 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중상에 지나지 않는 건지,
그리고 또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몇 사람이나 그렇게 했는지, 그 진상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겠다. <푸른 제모>의 관습에 따라 나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달라고 그들에게 제안하고 싶을 뿐이다. 하긴 그토록 극심한 기근 시대에 동물에게줄 먹이를 어디서 구해 온단 말인가? 노동 계급의 식량에서떼어 온다? 그 인민의 적들은 어차피 죽게 마련인데, 그들의죽음으로 공화국의 동물원 사업을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우리의걸음을 촉진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이 합목적성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 P267

인간은 악과 선 사이에서 일생 동안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동요한다. 그러나 악의 한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선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곳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악행의 밀도, 혹은 그 정도, 혹은권력의 절대성에 의해서 일단 한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그는이미 인류에게서 떠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로의 복귀도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268

5.만약에 레닌그라드 봉쇄 시에 큰집에 있었다면 (식인종)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고기를 먹고 해부학 교실에서 사람의 간을 꺼내다가 팔아먹는 자들을 MGB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정치범들과 함께 감금하고 있었다.
- P279

그들은 너무나 섬세한 향기를 지닌 때 이른 꽃이었기 때문에 무참하게도 풀 베는 기계에 잘리고 말았던 것이다.
- P287

자만심에 빠져 있던 그는 별장 건축 자재를 제공해 달라는 어느 검사의 청탁을 거절해 버렸다. 사건은 바로여기서 기지개를 켠 후 언덕길 아래로 내달리듯 급속히 굴러가게 되었던 것이다(이것 역시 사건의 발단이 <푸른 제모>의물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의 하나이다).
- P303

그리고 자기 아내에 대한 연민, 이미 오래전부터 그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아내는 이제 열흘마다 한 번씩(더 자주는허락되지 않았다) 그에게 호화로운 차입품 - 하얀 빵과 버터, 붉은 캐비아, 송아지 고기, 철갑상어 등 희귀한 음식 - 을가져왔다. 그는 우리에게 샌드위치와 궐련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나서 자기의 호화로운 식탁 앞에 (그 구수한 향기와 아름다운 빛깔은 늙은 지하당원 파스젠꼬의 푸르죽죽한 감자알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쭈그리고 앉는다. 그러면 다시금눈물이 갑절이나 쏟아져 내린다. 그는 크게 소리 내어 자기아내의 눈물을 회상한다. 때로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나온 연애편지 때문에, 때로는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는 어떤 여자의팬티(엉겁결에 자동차 속에 벗어 놓고 잊어버린) 때문에,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그의 엽색 행각 때문에 아내는 여러 해를 눈물로 보내야 했다.  - P305

형무소 의사는 신문관과 사형 집행인의 훌륭한 조수이다.
모진 고문 끝에 기절했다가 퍼뜩 정신이 들면 의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아직 더 때려도 됩니다. 맥박은 정상이에요.」 닷새 동안 추운 징벌 감방에서 시달린 차디찬 벌거숭이몸뚱이를 내려다보며 의사는 말한다. 「아직 더 해도 됩니다.」 - P314

어느 누구나 생애 중 한 번은 자기의 운명과 신념과 열정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계기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 P328

마룻바닥에 외투를 뒤집어쓰고 누웠다.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어 고개를 쳐든다.
가늘게 뜬 눈으로 창문을 바라본다.
축포로구나, 다시 눕는다.
다시금 외투 속에 몸을 숨긴다.

그 외투에는 참호의 진흙이 배어 있었고, 모닥불의 재가 묻어 있었고, 독일군의 총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승리는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해 봄은 우리들을 위한 것이아니었다.
- P355

조국에게 버림받아, 적들과 동맹군의 눈에도 가장 초라하게 비친 우리 군의 병사들만이 제3제국의 뒷마당에 버려진돼지 먹이보다도 못한 음식물에 손을 뻗었던 것이다. 젊은 영혼은 쉽사리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병사에 한해서조국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 제58조 1항의 b 때문이다.
전시에 이 조항에 관련되면 총살보다 가벼운 형벌은 없었다!
독일군 총탄에 죽고 싶지 않았던 병사는 포로 생활을 체험한후에 소련군의 총탄에 죽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다른나라의 병사는 적에 의해서만 살해되지만, 우리 나라의 병사는 동포에 의해서도 살해되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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