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이 파리로 다가오고 있었다...중략... 실망스럽게도 루브르 박물관 측은 내가 가진 그림은 보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공간을 내주기를 거절했다. 그들이 보존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그림은 칸딘스키 작품 한 점, 클레와 피카비아 작품 몇 점, 브라크의 입체주의 작품 한 점, 후안 그리스 작품 한 점, 레제 작품 한 점, 글레이즈 작품한 점, 마르쿠시 작품 한 점, 들로네 작품 한 점, 미래파 작품 두 점,
세베리니 작품 한 점과 발라 작품한 점, 두스부르흐 작품 한 점과 몬드리안의 ‘데 스틸‘ 작품 한 점이었다. - P83

독일군은 마리아 홀라스의 헛간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비시에 왔다가 철수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아들인 조르조가 그것을 안시로 실어 보내 주었고, 그것은 여러 주일 동안 플랫폼에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도착했다는 사실을모르고 있다가, 이윽고 그것을 찾아내 방수포로 덮어 놓았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 P85

그녀는 내게 다섯 명의 출중한 예술가들이 미국으로오는 비용을 지불해 줄 것을 요청했다. 나는 전신으로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내가 받은 답신에는 앙드레 브르통과 그의 아내와 아이, 막스 에른스트와 초현실주의 의사인 마빌 박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브르통의 아내나 아이, 마빌 박사는 출중한 예술가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브르통 가족과 막스 에른스트의 미국행경비를 지불하는 데에는 동의했다. 나는 또한 유태인인 빅토르라우너가 미국으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는 마르세유 근처의 산속에서 양치기로 변장하여 숨어 지내고 있었다. - P88

에른스트가 한 수용소에서 나와 다음 수용소로 갈 때까지, 혹은 수용소에 있는 동안 프랑스에서 그린 그림들은 그의 작업에서완전히 새로운 단계를 보여 주었다. 이들 그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풍경은 애리조나의 황량한 땅과 루이지애나의 습지와 아주 유사했다. 얼마 후 에른스트와 나는 그 지역을 방문했다. 에른스트는 그림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완전한 무의식에 기초해 있었고 깊은 심원을 품고 있었으므로
아무리 예언적인 그림에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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