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부터 유입된 망명 예술가와 작가들 덕분에 전쟁 동안뉴욕은 점령당한 파리를 대신해 서방 세계의 예술 중심지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유럽인들이 유럽으로, 대개는 프랑스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후 파리는 한결 빛을 잃은 듯한 데 반해, 뉴욕은강력한 경쟁자로 남아 있게 된다.  - P11

런던, 파리, 그르노블에서는 꿈을 펼치지 못했던 그녀는 전쟁터와 멀다는 점에 힘입어 뉴욕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와 시인 앙드레브르통의 조언에 따라 그녀는 자신의 컬렉션을 계속 늘려 나갔고,
《금세기 미술》이라는 눈부신 도록을 출판했으며, 같은 이름을 붙인 새로운 화랑을 열었다.
‘금세기 미술‘ 화랑은 즉각 전위의 중심이 되었다. 뒤샹, 에른스트, 브르통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 전통은 강하긴 했지만 결코 배타적이지 않았다. 위대한 추상화가인 피터 몬드리안 역시 환영을 받았고, 젊은 미국 예술가들의 정기 그룹전을 선정하는 심사 위원으로 능동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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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바지오츠, 로버트 머더웰,잭슨 폴록 - P12

마크 로스코, 클리퍼드 스틸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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