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앗빛 얼굴에서 나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그리고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도는 것을 보았거든. 완벽한 앎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至高)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및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 P157

나는 지배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는데, 지배인이 눈을 치켜뜨고 캐묻는 듯한 눈초리를 내게 던졌지만 나는 그걸 성공적으로 무시해 버렸지. - P158

목소리를 제외하고 그에게 남은 게 있었던가? - P158

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 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구.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恨)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 P159

나는 내 삶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릴 마지막 기회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지만,어차피 내게는 아무런 할말도 없었을 것임을 알고 굴욕감을 느꼈을 뿐이야. 내가 커츠를 주목할 만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 그에게는 할말이 있었거든. 그리고 그걸 말할 수 있었던 거야.  - P159

그녀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는 내가 기왕에 들은 적이 있는 불가사의 함과 황폐함과 슬픔으로 가득한 다른 모든 소리들을 동반하고 있는 듯했지. 그 목소리에는 강에서 잔물결이 이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살랑거림,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내는 웅얼거림, 멀리서 들려오는 뜻 모를 절규의 그 희미한 울림, 영원한 어둠의 문턱 너머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 등이 섞여있었단 말일세
- P171

<작품 해설>

문학작품이 일단 작가의 손을 떠나면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므로 작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든가 혹은 없어야 한다는 설이있었다. 그래서 한때 영미권에서 이른바 신비평 New Criticism이라는 것이 판을 치고 있던 시절에는 작품을 작가로부터 철저히 분리시켜 생각하려는 비평적 관행이 일종의 신앙적 열의 속에서 추종되기도 했다.  - P177

우리가 「암흑의 핵심」을 그 작가의 삶이나 인생관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데에는 물론 하나의 대전제가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소설문학 본연의 허구적 속성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자서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 P179

이 소설은, 여느 모험담과는 달리, 단순히 흥미 본위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점은 이야기의 서두에서 말로가 커츠를 만났던 일을 내 체험의 절정)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내 주위의 만물에 대해, 그리고 내 사상 속에, 일종의 빛을 던져주는 듯했다고 서술하는 대목에서부터 이미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독자들이 이소설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이 <빛>의 성격부터 올바로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음을 비치고 있다.
- P182

안온한 삶은 그것에 탐닉하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자기 성찰의 기회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평온한 삶에 안주하면서 자아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하는 한, 인간은 삶에대한 궁극적 지혜를 달성할 수 없으며 결국은 바보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가 자기 이야기의 어느 한 대목에서 바보들은… 늘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듯이, 바보는 자아 탐색 혹은 자기 발견이라는 고통스런 과정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늘 안전할 수 있지만 그의 삶은 <짐승>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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