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이 문장을 말줄임표로 끝내는 것은 이야기가 계속될수도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고(<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을 듯하다. 그러나....> 하는 식이다), 문장 중간이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 말줄임표를 넣는 - P114
것은 글의 일부가 생략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다(<나는어떤 미지의 여인에 관한 그 이상하고 선연한 꿈을 자주 꾼다......그 여인은 전적으로 똑같은 사람도 아니고 전적으로다른 사람도 아니다> 하는 식이다). 그에 반해서 비전문가들은 자기들이 사용하고자 하는 수사법이 지나치게 대담하다 싶을 때 말줄임표를 넣는다. 예컨대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마치... 한 마리 황소 같았 다>할 때처럼 말이다. - P115
인간은 언제나 동물에게 무자비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못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동물을 다르게 대하기 시작했다. 모든 동물을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여전히 태연자약하게 동물의 고기를 먹고 있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동물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는 않게 되었다. 대중 매체와 학교와 공공 기관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상대로 저지른 많은 잘못에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변명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럴 때 동물의 선량함을 떠벌리는 것은 심리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 P236
그래서 제3세계 어린이들이 죽어 가는 것은 못 본 척하면서도 선진국의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와 토끼는 물론이고 고래와 악어와 뱀까지 존중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교육 행위 자체가 옳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교육을 위해 선택한 방법에 문제가 있다. 동물의 생존권을 존중한답시고 동물을 인격화하고 아이들의 친구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사람들은 어떤 동물이 본능에 따라서 잔인하게 다른 동물을 잡아먹을지라도 이 지구상에 생존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그런 동물을 착하고 상냥하고 재미있고 너그럽고 영리하고 침착한 존재로 만들어 존중을 받게 한다.
그러나 나그네쥐는 경솔하고 고양이는 게으르며, 여름날의 개는 침을 많이 흘리고 새끼 돼지는 냄새가 고약하며, 말은 흥분을 잘 하고 자벌레나방은 아둔하며, 달팽이는 끈적거리고 살모사는 독이 많으며, 개미는 상상력이 빈곤하고 밤피꼬리는 음악적으로 창의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동물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우리가 고래를 보호하는 것은 고래가 착하기 때문이 아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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