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사전 -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
조재연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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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같은 단어를 말하고 있는데도 듣는 이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살면서 간혹 겪는 이 같은 일을 요즘 들어 부쩍 더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내 주변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부터다. 가까이로는 조카로 시작해 초등 저학년 때 만났던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 거의 다 중학생이 되고 부터는 말이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어 튕기는 것은 물론이고 날카롭게 깎여 찌르는 일도 다반사다.

 

어떻게 해서 동일한 표기와 발음을 갖는 단어가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으나 확실히 기성세대와 청소년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세대가 대립하는 게 단순히 한 때의 일로 치부되기엔 요즘 청소년들로 인해 빚어지는 사회적인 문제가 너무 커서 마냥 지켜보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누군가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을 옥토 밭에 물주는 걸로 생각지 말고 자갈밭에 물을 붓는다 생각하라는 말을 했을 땐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라 공감했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끝도 없이 주는 데도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신들을 향한 귀한 인내와 말이 쓰레기처럼 취급당하는 데 있어서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고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되었다. 이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지인의 고뇌였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조금의 도움밖에 주지 못하는 나 역시 수시로 느끼는 바이기에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변화할까, 아니 변화가 가능하긴 한 걸까 회의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아이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 더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수년에 걸쳐 경험했기에 다시 끌어안기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반복해 왔다.

 

아이 편에 서서 생각해보면 아픔과 성냄, 외로움과 동경 등의 마음이 백번 이해된다. 큰 소리로 욕하고 싶겠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곳을 집으로 여기고 싶지 않겠지, 늘 바쁜 부모에게 관심 받고 싶겠지.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이 어떤지 얘기하고 싶겠지.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이에게, 아무런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답답함을, 외로움을, 화남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가 보다.

 

이 같은 아이들의 마음이 수천 통의 편지로 조재연 신부가 운영하는 ‘고길동 상담실’로 배달된다. 아이들이 잘 아는 이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그가 아기공룡 둘리에서 나오는 고길동의 이름을 빌려 만든 이곳 상담실로 아이들이 생생하게 겪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주는 이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들이 ‘청소년 사전’에 담겨 나왔다.

 

 

 

가난과 폭력, 무관심, 우울, 과다경쟁과 비교, 왕따 등 살면서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것들이 무수히 아이들을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한다. 이에 대해 깊이 개입하지 못하더라도 잘 들었노라고, 참 아팠겠다고, 잘 참았노라고 다독이며 말해주는 이가 있어 아이들은 그나마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현재 청소년 문제가 워낙 보편화된 문제이기에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모두가 알고 수긍하고 있듯 그 원인이 지나온 기성세대의 사고와 행동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무엇이 싫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꿈이나 희망이 없는 많은 아이들을 바라보면 열렸던 마음마저 닫히는 경험을 수도 없이 하고 산다. 또한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 국가가 미래의 기둥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해야 할 일은 참 많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 같아 보여도 통합되지 않고 산발적인 움직임만 있으니 참 안타깝다.

 

오늘도 이 책을 읽으며 센터의 아이들을 생각했다. 여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워낙 짧고 제한적이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이 아이들도 풀어놓고 싶은 답답한 이야기가 가슴에 쌓여 있겠지, 하지만 지치지 않고 들어주며 호응해주고 지지해주는 이가 없어서 포기하고 살았겠지, 하고 생각하니 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와서 토닥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온몸으로 나타내는 그 순간순간에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와 다른 의미로 말하는 동일한 단어에서 단 한번이라도 아이의 마음을 읽고 다독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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