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어느 순간부터 성장소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성장소설은 청소년기에 읽으면 딱 좋은 것으로만 알았지, 그 속에서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나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완연한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어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성장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나에게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서 공감과 도전을 함께 받을 줄 몰랐다.

어찌 보면 제목부터 심심한, 또 달리 보면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냥, 컬링’을 손에 들고는 컬링이 뭘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릿속을 뒤져보았다. 워낙 빈약한 창고라 머리를 구부리는 미용기술을 잠시 떠올렸을 뿐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어 일단 책을 펼쳐들었다. 읽다보면 무슨 뜻인가 알겠지 하면서... 오히려 컬링보다는 ‘그냥’에 내 마음이 먼저 꽂혀버렸다. 양귀자씨의 ‘희망’을 읽다가 발견한 그냥에 대한 글귀에 무한 감동을 했던 때가 언제던가? 10년은 훨씬 넘었고 20년은 안 된 것 같은 그 때,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던지 그 글귀를 인쇄해서 코팅한 책갈피가 여태 나만의 보물 상자 안에 남아 있었다.

“그냥, 아무 이유도 댈 수 없지만 그냥 내 마음에 어긋나지 않고 역겹지 않으며 정답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이 ‘그냥’에 한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여태까지 살면서 특별하고 거창한 사람이나 물건이 흡족하게 제 몫을 다 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을 쫓아다니다간 시간만 헝클어놓기 딱 알맞다.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의 ‘그냥’을 믿는다.”

다시 읽어봐도 나의 그냥에 대한 단상을 명확하게 글로 표현한 게 마음에 쏙 든다. ‘그냥, 컬링’을 읽으며 이 책갈피로 읽은 곳을 표시해두니 정말 잘 어울리는 게 마냥 뿌듯하다. 그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읽은 ‘그냥, 컬링’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도가니’를 읽을 때보다는 수위가 약한 분노, ‘완득이’를 읽을 때만큼이나 빵빵 터지는 웃음보따리, ‘꽃피는 고래’를 읽었을 때보다는 진지함이 덜하고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보다는 진지함이 더한가?

제2의 김연아를 꿈꾸는 동생과 엄마를 따라 상경한 으랏차차 차을하. 엄마의 모든 관심은 동생 연화에게 쏠려있기에 집에서는 정말 손이 안가는 아들로, 학교에서는 얼마 전까지 왕따로 살던 을하가 어느 날 산적과 며루치의 표적이 되어 무작정 함께 활동하게 된 것이 ‘컬링’이다.

4명이 한 팀이 되어 빙판 위에서 둥근 공을 미끄러뜨려 하우스 안에 넣어 득점을 얻는 컬링, 종주국이 스코틀랜드이고 서민들의 울분과 저항정신으로 시작되었다는 컬링, 마땅히 연습할 만한 빙판하나 없어 보따리장수처럼 라인과 하우스를 그려서 연습하다 쫓겨나기가 다반사인 컬링, 야구나 축구처럼 인지도가 높지도 않고 그런 종목이 있는지도 모르다 동계올림픽이 열릴 때면 잠시 떠오르다 다시 사라지는 컬링. 하지만 굶주림을 참듯 연습에 임하고, 함께 하는 이들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엮이게 되며 어느새 컬링에 빠지고 마는 을하. 그런데도 컬링을 하는 이유는? 그냥... 을하도, 며루치도, 산적도, 추리닝도, 박카스도 모두 그냥...

거창한 의미 없어도 내가 즐기고 있는 것에 대한 나름의 충분한 이유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말 ‘그냥’. 몸은 성인이어도 아직은 어린 고등학생일 뿐인 산적이 짊어진 무거운 짐에도 불구하고 몰두하게 만드는 힘, ‘그냥’. 학교를 떠날 결심이 선 산적 앞에서 깡패가 될 생각인가 물으면서도 미래를 함께 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며루치의 끝없는 믿음, ‘그냥’. 돈과 권력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친구를 편드느라 거센 폭력에 노출되면서도 기꺼이 그 일을 해내는 힘, ‘그냥’.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알아주지도 않는 컬링을 하는 이유, ‘그냥’... 그래서 ‘그냥’은 그냥 ‘그냥’이 아니라 산적의 말마따나 숨통이 트이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함께하기 위한 이유가 되고 지침이 되고 위로가 된다.

아, 나도 ‘그냥 컬링팀’의 조력자가 되고 싶다. 왜? 그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