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빌라 단지 내에 중고등학생들이 실내화로도 외출용으로도 애용하는 삼선 슬리퍼 한 짝이 접착 면이 완전히 떨어져 초라한 모습으로 버려져 있었다. 얼른 주위를 돌아보니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하얀 양말을 신은 채로 땅을 밟고 걸어가는데 10여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니, 지가 신고 다니던 신발인데 못 신게 됐다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에 버려둬도 되는 거야? 저 녀석을 당장 불러 호통을 칠까? 아니지, 요즘 청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얼라하고 싸움이라도 붙으면 동네 창피하지.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게? 혹시 앙심 품고 우리 딸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해? 그나저나 뉘 집 아들이야? 저쪽 통로에 중고생 남학생이라면 둘 밖에 없는데. 혹시? 그럼 학생 엄마한테 얘기를 해줘야 해, 말아야 해? 에고... 재활용 쓰레기장 꼴을 좀 보라지. 어른들의 행태가 그러니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나나 잘하자!’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학생의 모습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이젠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다. 버리고 간 아이는 그렇다 치고, 못 볼 꼴을 본 나는 버려진 슬리퍼를 그 자리에 그냥 둬야 할까, 아니면 쓰레기장에 갖다 버려야 할까 하는. 결국 나라도 잘하자는 결심을 했으니 치우기는 치우는데 도저히 손으로 만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 발로 차 가면서 쓰레기장에 버렸다.
쓸모가 없어진 슬리퍼를 버리고 간 학생을 비롯해 100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우리 빌라에는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인 아이들부터 온갖 학원을 다니며 성적을 올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어 심하게는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어 맘이 짠하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이나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다운 사람은 몇 없겠구나 싶은 생각에 씁쓸한 생각도 많이 든다. 왜냐하면 교과서에 든 내용만 깊이 파고들 뿐 사람이 살아가는 것에는 관심을 쏟을 여유도 생각도 못하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될 만큼 문제 많은 요즘 아이들의 행태에 소름 끼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에 교육에서 진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현직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들이 좀 깨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가득하다.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득한 이때에 만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란 책은 제목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공부든 도덕이든 교육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데, 공부 잘하는 아이치고 성품 좋은 아이 없고 오히려 공부에 목매지 않는 아이들 성품이 좋다는 인식이 너무 강한(실제로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에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스스로 사고하고 느끼는 행위를 통해 도덕성과 자유에 이르는 것을 내세운 발도르프 교육을 정식으로 받고도 발도르프를 그대로 베낀 교육을 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무리 좋은 교육이라도 ‘이때,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이 삶’이 빠지면 결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교육을 함에 앞서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구체적으로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 교육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지 못함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권만 바뀌어도, 누가 어떤 주장을 했는가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나 교육 현장을 보면 충분한 공감이 간다.
때문에 저자는 우리 조상의 얼굴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찾는다. 살아온 삶이 녹아 떳떳하고 당당함과 모지락스럽지 않은 곱게 늙음이 어우러진 얼굴 말이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 빼어남만 강조하고 곱게 늙을 수 없는 비인간적 행태가 판치는 현실이기에 통탄한다.
이러한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적 인간상을 만들어 가는데 있어 교육이 담당해야 할 몫이 바로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모든 교과가 도덕교육과 관련을 갖고 있음을 새롭게 인식하고 수없이 많은 길로 통할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의 눈을 갖게 하는 것 말이다.
우리말과 외국어, 한문, 수학, 과학, 음악, 미술, 책읽기 등 다양한 교육의 장에서 우리의 삶과 연결되는 수많은 갈래를 인지하고 이들이 모여 하나의 독립된 인간을 만드는 것에 우리의 촉수를 집중한다면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이 요원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때, 이 땅에서 교육 받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며 도덕적 인간상에 이르는 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교육자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