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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뒤의 약속 ㅣ 을파소 중학년문고 1
박상률 지음, 박영미 그림 / 을파소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빌라 내 도로가 파손됐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으나 석유의 부산물이라는 아스콘으로 덮은 도로가 처음엔 부풀어 오르더니 트램펄린처럼 탄력이 생겨 그 위에서 구르면 튕겨 올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새어나왔다. 동네에선 분명 상수도관이나 오수관이 파열되어 그렇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땅을 파헤치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어이없게도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물이 솟아올랐다. 파인 곳만큼 저수지가 되어 보는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든 이 공사를 해결하느라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 들어갔다. 이후로 사람들은 이 주변이 모두 저수지였었다, 주변 곳곳에 우물 있던 자리가 아직도 남아있는데 문제의 이 부위도 우물터였을 것이다, 비가 많이 와서 땅속 물길이 바뀌었을 것이다 등등 갖가지 추측이 오갔다.
이 일을 해결하는데 본의 아니게 중심에 서서 동분서주했고 겨우 일단락 지은 지금은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볼 여유가 생겼다. 내가 태어난 곳도 큰 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되어 흔적도 없다 들었는데, 그 당시 그곳에서 수백 년간 터를 닦고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 어찌 되었을까 궁금했고, 지금 이 빌라 터가 저수지였다면 이 저수지와 주변에선 어떤 이야기가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사람 사는 곳이면 그 어느 곳이든 재미있고 눈물 나고, 어이없고 안타까운 사연 없는 곳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겪은 오늘의 이 이야기가 수 년 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릴 것이고.
아이와 함께 읽은 지 한참 된 책 ‘십 년 뒤의 약속’이 번뜩 생각난 연유도 바로 마을의 도로 파손 사건이 있고나서였다. 곧 수몰될 예정인 슬구네 집 마당 감나무에 와서 쉬고 가는 까치를 걱정하는 소년이나, 애틋한 마음 한 자락 표현하지 못한 순진한 소년에게 그 마음을 어찌 알고 십 년 뒤에 만나자는 약속 편지를 써서 보낸 소녀나 모두가 마음 짠하게 한다.
처음 읽었을 땐 큰 감흥 없이 읽었는데, 동네의 일로 감정이 이입되니 같은 이야기도 새롭고 더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 그저 책속의 이야기일 뿐인데도 이러한데, 실제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짠할까 생각하니 덩달아 슬픈 마음이 되고 만다.
평범해 보이기만 했던 건물, 길, 사람들이 사실은 그 속에 말 못할 깊은 사연이나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씩 간직하고 있을 것 같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도 책이 지닌 매력인가보다. 선선한 저녁 바람 쐬고 산책하듯 시부모님 댁으로 가서 그 분들이 살아온 이야기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어느 동네, 어느 산, 어느 개울의 이야기를 듣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