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 기지 비밀 친구 구함 ㅣ 책 읽는 습관 1
김경옥 지음, 유명희 그림 / 꿀단지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병만이는 우기기 대장이다. 우기기가 통하지 않으면 곧잘 화도 내고 주먹질도 하기에 단짝친구도 없는 쓸쓸한 아이가 바로 병만이다. 엄마 아빠가 모두 대학 강사라 늘 바쁘기에 하나뿐인 아들에게 신경써주지 못해 사랑도 많이 부족한 아이.
이런 병만이에게 재건축을 앞두고 모두가 이사 간 연립주택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꿈동산 같은 곳이다. 찌그러진 냄비를 쓰고, 촌스런 보자기를 둘러 쓴 채 막대기를 휘두르는 병만이는 용맹한 장수가 되기도 하고, 못 쓰는 물건들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병만이만의 비밀기지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영이란 아이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자신만의 공간이 침범 당했다는 불쾌함도 잠시, 늘 외로웠던 아이인 병만이는 우영이에게 비밀기지의 출입을 허락하고 친구가 된다. 병만이와 우영이가 하늘과 땅을 두고 한 맹세는 우영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데리고 오면서 위기를 맞기도 하고, 화해도 하며 인품도, 생각도 한층 여물어 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어렸을 때도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 하나쯤 숨어들어도 모를 나만의 공간을 무척 동경했던 것 같다. 특히나 한 방에서 여섯 명의 가족이 함께 생활해야했기에 더 간절했던 그 때, 결국 나만의 공간 하나 마련해보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는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지,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도 학교에 비밀기지가 있다. 물론 누구나 알 수 있는 화단 주변을 비밀기지 삼았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그곳이 기지인 줄 모르기 때문에 비밀기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그 곳에서 함께 할 동지들도 모아 일주일에 한 번 5교시가 들은 날에 회합도 가졌다. 규율도 철저해서 학교 앞에서 사는 친구의 동생이 학교에 놀러 와도 그 누나인 아이가 비밀기지를 침범 당하면 안 된다며 돌려보낼 정도이다. 이렇게 노는 아이들이 마냥 귀엽기만 한 나는 가끔씩 아이 편에 특별 간식을 보내주기도 하며 비밀기지에 대해 유일하게 아는 어른 멤버가 되었다.
지금도 집에서 빨래건조대 아래에 담요를 깔고 베개로 바리케이트를 치며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며 유치하게 노는 딸아이가 가끔씩 귀찮고 짜증도 나지만, 이런 시기도 오래 가지 않고 엄마한테까지 비밀을 잔뜩 숨기는 새침한 사춘기 소녀가 될 것임을 알기에 가만히 보고 웃어준다. 비밀 기지와 비밀 친구를 가지고 있을 때가 바로 엄마 품안의 자식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