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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ㅣ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세상이 온통 남루하고 부족한 것 천지였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며 자신의 유년기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얼마 안 있어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 ‘나 어릴 적에’를 읽었다. 선생님의 손끝에서 나온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리지며 ‘그땐 정말 그랬지.’ 하며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었어도 내가 보낸 7∼80년대의 유년시절 역시 부족한 것투성인, 어딜 보나 가난의 그림자가 짙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요즘 아이들이 읽는다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해 그다지 기억에 남을 것 같지 않은 이 책을 보며 내가 생각한 것은 극성스럽게 느껴질 만큼 교육에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던 엄마가 있었던 박완서 선생님이 참 부럽다는 정도였다. 아마도 ‘작가 박완서’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엄마가 계셨기 때문이리라는.
근래 또다시 작가의 어린 시절을 다룬 작품인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읽었다. 아래로 동생이 셋이나 되는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난 ‘연재’가 화자가 되어 가장이 부재한 자리에서 많은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으로 늘 그늘진 엄마, 토박이 아이들의 텃새에 꼬리 내리지 않고 온몸으로 맞서 싸우면서 그들을 자신의 친구로 만들고 마는 당찬 오빠와 함께 설움과 동경, 희망과 안타까움 같은 다양한 감정의 틈바구니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칭찬을 들을 만큼 똑똑하고 야무진 오빠가 새마을 운동을 주제로 한 웅변대회에서 1등 상을 받아도, 그 운동의 일환으로 추레하지만 바람을 피하고 잠을 자며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가족의 쉼터가 허물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눈부신 발전에 가려 서러움 당하는 소시민들의 애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원망스럽기는 해도 무능력한 아비를 원망하기 보다는 그 아비가 철없는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건 참을 수 없어하는 아이들, 고향에서는 늘 다정했던 엄마가 생활고에 찌들려 더 이상 예전의 엄마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음에도 일찍 철든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퉁명스레 던지는 한마디가 그다지 싫게 느껴지지 않음도, 똑똑한 아들을 탐내는 부잣집에서 수양아들 삼자는 말을 내치는 엄마와 오빠가 가게 될지도 모를 집을 찾아가는 연재의 모습에서 부족한 투성이지만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만은 넘치도록 흐르는 걸 보게 된다.
모진 바람에도 대견하게 가족을 보듬어준 꺽다리 집을 바람에게 내어 주고 이사하는 날, 어둠속에서 집을 바라보던 감수성 예민한 소녀 ‘연재’가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아련하게 남는데, 이렇듯 추레한 옛이야기에서 무어 건질 것이 있다고 자꾸들 옛이야기를 쓰나 싶고 그 책들을 읽으며 직접 경험해 봤으면서 지겹지도 않나 하면서도 그저 좋은 건, 힘들다고 아이를 안고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엄마나 홧김에 자식과 함께 자동차 안에서 분신자살하는 아빠, 패륜아들의 이야기가 하루가 멀다 하며 보도되는 세상을 살기에, 없는 형편에서도 가족들을 가장 큰 재산으로 여기고 서로 보듬어가며 살던 그때가 정말 좋았던 때임을 내 머리와 가슴이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