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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해 ㅣ 이건 내 얘기 6
제니퍼 무어-말리노스 지음, 글마음을 낚는 어부 옮김 / 예꿈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난청아 라나의 이야기가 담긴 「난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해」를 처음 보면서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었던, 시작은 지극히 사소했던 결정이 떠올랐다.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면서 작은 일이라도 무언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어 큰 비중을 두지 않고 가입했던 수화 동아리, 그 당시 27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전무 했던 나는 동아리에서 배운 수화와 각종 모임과 행사, 봉사활동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던 청각장애인들은 각자가 지닌 열정이나 재능과 상관없이 사회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고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없는 실력이긴 했지만 서울에 있는 작은 농아인 교회에서 어른들을 위한 예배시간에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었지만 다행히 보통의 아이들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그 천진한 아이들과 노래도 하고, 그림도 그리며, 성경 동화를 읽어주는 사이 어느새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동아리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할 때는 농아인 교회 목사님께서 주례도 서주셨다.
나 역시 수화를 배우러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손짓말을 하는 청각장애인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거나 안쓰러운 마음을 먼저 가지고 바라보았을 테지만, 수화를 배우면서 건청인들의 지나친 견제나 호기심이 오히려 그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지금은 청각장애인들도 그들이 지닌 개인적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조속히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의 고민이나 장애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 쓴 ‘이건 내 얘기’시리즈의 여섯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라나는 보청기를 끼면 어느 정도 들을 수 있는 ‘난청아’이다. 라나는 긍정적인 생각과 사랑으로 자신을 키우시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영향으로 잘 들을 수 없다는 자신의 장애를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라 여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성격까지 좋아 스스로를 아주 멋진 아이라고 자부하는 라나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라나와 달리 세상의 소리를 아주 잘 들을 수 있는 예민한 귀를 가졌어도 라나처럼 운동을 잘 하지 못한다. 공이 날아오면 무서워서 먼저 피하고 보는데 라나는 학교 배구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될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다. 또한 타인의 대화를 귀로 들을 수 없어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무슨 대화를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와 라나는 서로 잘 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는 그저 조금 다를 뿐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자 하는 라나의 꿈은 늘 바뀌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변함없는 소망 한 가지는 정말 내 마음을 울린다. 지금도 충분히 멋지지만 오늘을 멋지게 살 것이기 때문에 내일은 더 멋진 아이가 되어 있을 거란 라나의 말이 오늘 하루를 대충(?) 산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난 이미 좋은 아내와 좋은 엄마가 되는 꿈을 거의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멋진 내가 되기 위해 오늘 하루를 더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라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